아침에 부엌의자에 앉아 애들 깰 때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분도 알고 계신 우리집 막내가
- 엄마 , 어젯밤에 엄마 코 고는 소리 녹음했어, 들려줄까?
하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저는 '이게 먼 소리야,, ' 하는 기분으로
- 아니, 엄마 코고는 소리를 녹음하다니,, 안들어!
했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은 낄낄 거리면서 엄마, 재밌잖아, 들어봐, 하는 겁니다.
- 아~니! 너도 니가 늙었을 때 니 딸이 니 코고는 소리 녹음해서 들려준다면 니는 기분좋게 듣겠니?
했더니, 알았어~ 그럼 삭제 할게~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왜이리 거부반응을 일으킬까 생각해보니 참,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찮아도 거울 볼때마다 늘어가는 주름 보며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구나.. 하는데 느닺없이 코고는 소리를 녹음했다고 들려준다니..
그 얘길 듣는 순간 복잡한 뭔가가 쓰윽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더라구요.
차라리 엄마, 방구 꾸는 소리 녹음했어, 들어볼래요?, 이런 경우라면
아마도 같이 들으면서 엄청 웃었을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그것은 재미는 있었지만
좀 괘씸한 거 같군,,하는 여운이 남았을 것 같네요.
그러면서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데 아마도 막내아이 낳은 병원에서의
일일 겁니다.
이상하게 그때 한 간호사가 저를 특별히 신경을 쓰며 돌봐주는 겁니다.
아기 수유시간이 되면 일일이 아기방에 들르곤 하는 게 힘겨워보였는지
손수 아기를 데려오면서 수유가 끝나면 벨을 누르라 합니다. 아기 데릴러 오겠다구요.
나중에 그 간호사에게 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었냐 물었더니
저의 자는 모습이 너무 곤해 보여 그랬다는 겁니다.
문득 그때도 제가 코를 좀 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그 간호사를 오랜만에 떠올렸는데 천사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뭉클해지는 걸 보니..
지난 수요 성경공부 모임때 목사님께서 천사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아마 이런 사람이 사람 모습을 한 진짜 천사 아닐까, 하는
장난끼 섞인 생각도 듭니다.
잠시 후, 막내가 다시 들어와서 엄마, 코고는 소리 지울게, 하면서 눈 앞에서 삭제하더군요.
그러면서 엄마, 눈오는 소리 녹음한 거 있는데 들려줄까? 하는 겁니다.
- 눈오는 소리를 어떻게 녹음해. 눈 오는 소리는 안들려. 아마 바람소리일거야.
했더니 눈 오는 소리가 녹음되었다고 박박 우기는 겁니다. 그래서 들어봤는데..
이게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비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절대로 눈 오는 소리는 아닌 겁니다.
바람소리야, 이건, 했더니 눈이 비오듯 쏟아진 날이 있었다고 그날 녹음한 거라 하는데
얘 표정을 보니 이건 믿어줘야 하는 것 같더군요.
- 그래 눈 소리 맞다.
이렇게 오늘 오전 부엌에서의 상황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얘가 눈 오는 소리를 녹음했다는 소리를 듣곤
아주 잠깐 눈 오는 여러 모습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펑펑 푸짐히 내리는 모습, 내릴 듯 말 듯 송이 하나하나 날리는 모습, 쓰륵쓰륵 내리는 싸락눈 등등이요.
잠깐이었지만 아주 행복한 순간이었답니다.
(혹시 <기억 전달자>라는 소설 읽어보셨나요? 디스토피아에 대한 건데 거기서도 눈에 대하여 추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좋은 소설이니까 추천드려요~ 중학생 이상 어른에게도 재밌게 읽히는 책입니다.)
원래
어제 중앙도서관 앞 광장에서 본 S 교단 활동하는 모습을 쓰려고 들어왔는데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얘기가 곁길로 길~게 빠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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