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남정은 얼마일까요?] 라는 글의 후속편입니다.
그런데 ... 분명 교회게시판에서 읽은 글인데 링크를 하려니 도저히 못찾겠습니다. ㅠ.ㅠ
혹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에 링크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 그 글은 한장의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 동일 사진은 아닙니다.)
사진 찾다보니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어라? 의도하지 않은 정선생약초 ....
이거 순서를 바꿔서 사진 한장 올리겠습니다.
경남 대표 한우브랜드라고 하네요.
아참참 ... 다시 본론으로 ....
일단 주인공 황기 님을 등장시키기 전에 잠시 김태형 님을 소개합니다.
이제 주인공 황기 님의 등장입니다 ...
대구의 무덕관(武德館)은 무예나 스포츠의 종목과 상관없이 떠올리는 ‘무덕(武德)’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다.
‘무덕’은 태권도와 유도의 대표적 도장 이름이었으며, 그러한 정서와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무예가 성한 대구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무덕인 충(忠), 의(義), 신(信)의 도시인 셈이다.
◇1959년 9월 3일 대한태권도협회 창립 기념사진.
앞줄 좌로부터 황기, 윤쾌병, 최홍희, 노병직, 체육회 임원 중 한 명, 현종명, 엄운규, 이남석,
그리고 뒷줄 좌로부터 김순배, 고재천, 남태희. 이들 중에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분들이 있다.
무덕관은 황기 선생에 의해서 설립됐다. 황기는 어릴 때 택견을 배우고, 중국에서 태극권과 쿵푸를 배웠다.
덧붙여 그는 철도 회사에 다니면서 도서관에서 오키나와 가라데 책을 읽고 가라테의 철학을 읽었다고 한다.
1957년 황기는 한국의 고전 무예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 한국의 전통 무술 ‘수박’을 발굴한다.
이 무예서로부터 손과 발의 타격 기술을 취해서 무덕관 태권도의 기술을 완성한다.
무덕관은 당시 최대의 태권도 도장이었다.
1953년과 1970년 사이에, 전체 태권도 수련자의 약 75%가 무덕관에서 배웠다.
국기태권도가 만들어지기 이전 6대 도장 중 하나인 무덕관 초대 관장.
수박도 창시자.
세계적인 무술잡지 블랙벨트 선정 1989년 올해의 무도인
살려주세요 .... ㄷ ㄷ ㄷ
[추가] 황기 옹이 '무예 도보 통지' 를 연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한국무술이 아니라 중국의 '태조32세장권'의 개량형입니다.
이 권법의 원류는 중국 남권으로 무예도보통지보다 먼저 만들어진 '무예제보번역속집'에 기록되어 있고
현대 '24반 경당' 등에서 '현각권법'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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