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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 주현절후 셋째 주일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1월23일, 주현절후 셋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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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초)

(마태복음 4:12-22/ 예수는 빛이다)

 

위 본문은 두 가지 전승을 전한다. 하나는(12-17) 세례 요한의 구금 이후 시작된 예수 활동을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연결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18-22) 예수가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이다. 아주 간단한 두 이야기를 설교자는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며, 어떤 주제를 전해야 하나?

마태가 세례 요한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설명을 설교에서 자세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설교자는 나름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다. 선지자 전통이 끝나고 이제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선지자와 메시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선지자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요한의 선배라 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여기서 인용된 건 당연하다. 사 9:1,2절에는 흑암, 큰 빛, 사망의 땅, 그늘 등의 단어가 키워드로 나온다. 독자들은 마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 챌 수 있다. 이사야가 전한 빛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여기서 빛과 메시아니즘의 관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 빛은 생명, 구원에 대한 메타포다. 창세기의 창조보도에 나오는 첫 창조는 빛이었다. 예수가 빛이라는 성서의 주장을 전하려면 세상이 흑암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왜 세상이 어둠인가? 왜 메시아가 와야만 하나? 여기서 설교자는 두 가지 관점으로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1) 인간의 실존은 흑암이다. 인간 스스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오늘처럼 풍요의 세계에서도 흑암이 여전하다. 2) 흑암의 존재론적 근거는 죄다. 교만, 자기사랑, 자기연민, 자기집중이라 할 죄는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유대인은 율법으로, 이방인은 율법 없이 죄에 물들어 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가 왜 빛인가? 선지자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질문들을 깊이 있게, 설득력 있게 전하려면 예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총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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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예배처소)

예배시간: 매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 매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오늘은 주현절 후 셋째 주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서 마음을 합해 그분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드립시다.

*찬송……………………………………(38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인자하심과 자비로우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주현절 후 셋째 주일을 맞아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다른 일손을 멈추고 지금 여기 모였나이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오직 진리의 영으로 예배를 주관해 주시고,

악한 영이 틈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은 우리의 모든 인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인자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나이다.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잔잔한 바람처럼,

때로는 화산처럼, 때로는 봄 햇살처럼 찾아오시고,

어느 때는 예고하시며,

때로는 예고도 없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고단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셨나이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오니,

주님 홀로 받아주소서.

이 세상에 생명과 구원의 참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긍휼이 많으신 주여,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의 죄를 자복하나이다. 생명을 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하거나 또는 죽이는 방식으로 허둥대며 살아왔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수많은 가축들이 구제역으로 떼죽음을 당했나이다. 생명체를 물건으로 취급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먹이사슬을 인간 중심으로 파괴할 때가 많았으며, 생산과 소유가 바로 삶인 것처럼 착각했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세상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오해한 채, 세상을 섬기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데만 마음을 두었나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신비를 외면했나이다. 간절히 원하오니 우리의 교만과 무지를 용서해주소서.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저희는 무기력하게 지낼 때가 많았나이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과도 마음을 나누지 못했나이다. 우리로 인해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사오니 저희를 불쌍해 여겨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다같이: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의 하나님은 아빠 아버지이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뢴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해서 불안해하지 말고, 앞으로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찬송하십시오.

<회중> 주님의 자비로우심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국악찬송 37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주님,

지금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나이다.

우리의 귀를 열어 말씀을 바로 듣게 하시고,

눈을 열어 바로 보게 하소서.

말씀을 가로막는 악한 영을 막아주시고,

진리의 영만이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나이다.

말씀 앞에 직면해 있는 우리 모두가

온전히 그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 원하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구약봉독…………………………이사야 9:2-7…………………………강태주 집사

성시교독…………………………123, 주현절(3)………………………목사와 회중

서신서봉독………………………고린도전서 1:10-17………………강태주 집사

복음서봉독………………………마태복음 4:12-22…………………강태주 집사

설교………………………………예수는 빛이다……………………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131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633장)………………………………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오소서 평화의 임금)………………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주현절후 셋째 주일의 예배를 마쳤으니

이제 기쁨과 평화를 안고 세상으로 나가십시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에서 누룩처럼 살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기회 얻는 대로 돌보십시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생명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시편 공부가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석하십시오. 오는 수요일에는 시편만이 아니라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긴 구절로 구성된 119편을 공부합니다.

* 설교공부 대구모임이 월요일 저녁 7시에 있습니다.

* 심방이나 상담이 필요한 분은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 대구샘터교회 책읽기 모임인 ‘리다수’(理茶修)에서 알립니다. 모임 일시: 매월 첫째와 셋째 주일 오후 1:30분/ 장소: 예배처소/ 읽을 책: 정용섭의 <세상은 마술이다>는 매월 첫째 주일, 조지형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랑케와 카>(김영사)는 셋째 주일입니다./ 모임 시작은 2월6일부터이고, 해당 도서 27쪽까지 읽으시면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교회 카페를 참조하시고, 전남정 전도사에게 문의하십시오.

* 정용섭 목사의 책 <설교란 무엇인가>(홍성사)가 나왔습니다. 온라인으로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가능한 ‘예스24’를 이용하십시오.

* 2011년 1,2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1월- 2일 김종성, 9일 하해숙, 16일 류시경, 23일 강태주, 30일 정성훈

2월- 6일 구행자, 13일 곽영미, 20일 서병우, 27일 임부자

* 지난주일(1월16일) 헌금: 968,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10)

그대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소. 신앙 문제에서 솔직하기가 쉽지 않소. 왜 그런지 아시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소. 우선은 교회 분위기요.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 분위기는 그대도 잘 알 것이오. 무조건 믿기만 하라는 강요를 받소.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게 더 근본적인 것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오. 모르니까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고, 질문에도 자신이 없소. 삶의 요령을 잘 아는 것과 기독교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오. 자기가 무엇을 알고 말하는지 아닌지, 불안해하면서 자기 검열이 반복되고 있소.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한 대화는 불가능하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트집 잡는 것이 솔직한 대화는 아니오. 그것은 대화라기보다는 말다툼에 불과하오. 이런 말다툼의 방식으로는 진리를 경험할 수 없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양 극단으로 치우치기가 쉽소. 한쪽으로는 열광적인 믿음으로, 다른 한쪽으로는 공소한 말다툼으로 말이오. 솔직한 대화는 이런 것과 달리 기독교의 실체적 진실에 직면하는 것이오. 진리에 열린 마음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런 준비가 된 사람만 열린 대화에 참여할 수 있소.

내가 다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그대는 예수님을 영접하신 적이 있소?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어제 묵상에서 주관적 경험의 위험성에 대해서 지적했소.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신앙적 확신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진실을 왜곡하는 함정이기때문이오. 그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오늘 다시 반복하지 않겠소. 그런 경험이 모두 잘못된 것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오. 그렇지는 않소. 기독교 신앙에서는 개인의 경험이 중요하오. 그걸 부정하면 기독교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개인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오. 문제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경험이 보편적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소. 다시 묻소. 그대는 예수 경험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소? 그냥 ‘어젯밤에 주님이 날 찾아왔다.’는 방식의 설명으로는 곤란하오. 그런 방식의 설명으로는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가 없소. (2010년 12월2일, 목, 찔끔 비)

 

하나님에 관한 질문(11)

어제 솔직한 대화 운운했소. 이건 목사를 비롯해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매우 절실한 문제요. 왜냐하면 까딱하다가는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이오. 신앙의 연조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런 가능성이 높소. 교회도 사실 관료주의에 물들 수 있소. 그대도 이런 말을 들었을 거요. 젊었을 때는 삶에 대한 이해 수준이 비슷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차이가 심해진다고 말이오. 근원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경직되는 건 분명하오. 자기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것이오. 이게 신앙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오. 신앙의 근원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질문을 외면하면 영적으로 경직될 수밖에 없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보면 답이 나올 거요.

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상하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이 드오. 확신이 깊어진다기보다는 더 알아야겠다는, 더 경험해야겠다는 영적 갈망이 심해지는 거요. 이런 갈망의 길에서 솔직한 대화가 최선이오. 대화라고 해서 반드시 어떤 대상을 두고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오. 자기 자신과도 대화할 수 있고, 성서테스트와도 대화할 수 있소. 내가 보기에 신학의 어른들과 대화하는 게 영적인 배움에서 가장 효과가 크오. 여기서 핵심은 변죽을 울리지 말고 신앙 세계의 핵심을 치고 들어가는 거요. 그걸 두려워하면 신앙의 중심에 이를 수 없소.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그리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이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하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실제 경험이라고 할 수 없소이다. 여기서 ‘알아들도록’ 설명한다는 말이 중요하오. 자기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끝나지 말고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오. 대개 교회에서 간증 형식으로 신앙 경험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런 간증은 거의 주관적인 감상 차원에 머물러 있소. 예컨대 기도하는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간증 같은 것들이오. 그런 것으로는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없소. 세상을 바르게 직면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허튼 소리에 불과하오. 어떻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소? (2010년 12월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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