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3월27일, 사순절 셋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출애굽기 17:1-7/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출 17:1-7절은 이스라엘이 광야 시절에 겪은 일종의 에피소드다. 물이 떨어진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는 이야기다. 광야시절에 일어난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도 동일한 구조다.(출 16:1-36) 먹을거리가 떨어진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고 한다. 더 앞서 일어난 마라의 쓴 물 사건도 비슷하다.(출 15:22-27) 광야 생활 초창기에 사흘 길을 가는 동안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침내 마라에서 물을 얻었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의 기도 끝에 물이 정화되었다고 한다. 시련, 원망, 기도, 그리고 문제 해결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오늘 설교본문이 거론하고 있는 사건은 앞의 것들과 다른 점이 있다. 이 행동이 여호와를 시험한 것이라는 진술이 그것이다.
이 전승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설교자는 여기서 어떤 주제를 끌어낼 수 있는가? 물이 없어서 서로 다투거나 모세를 원망했다는 것이 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당장 마실 물이 없어도 얌전하게 앉아서 하나님이 해결해줄 때를 기다려만 하는가? 성서기자는 이스라엘 자손이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 17:1b)고 간단하게 묘사했지만 사태는 위급하다. 민족 전체가 지금 이동 중이다. 광야생활에서 물은 생존의 필수다. 이들이 빠져나온 이집트는 최소한 물은 풍족했다. 이 상황을 그냥 믿음으로 밀고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성원들이 옥신각신하게 마련이다. 설교자는 텍스트의 상황을 리얼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논란과 다툼을 가리켜 여호와를 시험한 것이라는 출애굽기 기자의 평가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먹을거리와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거나 서로 다툰 것 자체를 훈계조로 설교의 중심주제로 삼으면 안 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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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은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메시아의 고난이 말이 될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한한 풍요와 가능성만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신이 된 듯한 시대정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의 고난을, 즉 하나님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31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받아주소서.
당신 외에 우리가 기도를 바칠 이가 어디 있으며,
당신 외에 우리가 찬양을 드릴 이가 어디 있겠나이까.
세상으로 보냄을 받고 나그네와 손님으로 살다가
종말에 완성될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오니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마땅하나이다.
지금 모든 일상을 멈추고,
온갖 걱정과 즐거움을 내려놓고,
가깝고 먼 사람과의 관계마저 일절 잊어버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향해서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듯이 우리의 온 영혼을 집중하나이다.
우리를 받아주소서.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워주소서.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 셋째 주일,
주님의 고난이 참된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믿는 무리가
그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는 심정으로 여기 모였사오니
삼위일체 하나님이여, 여기 이 자리에 임재하소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의 낮은 자리에 오시어
십자가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부활생명으로 인류의 미래를 지켜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한 적이 많았습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우리는 남을 향한 비판에는 엄격하고 자신을 향한 반성에는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중심과 자기의(義)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왜 불신앙인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소비할 뿐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생명 통치를 외면합니다.
회중: 우리의 미련함을 잘 아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인 분별력과 용기를 허락해주소서.
목사: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평화가 파괴되고 있나이다.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으로 사람과 자연이 상품으로 전락되고 있나이다. 알게 모르게 이런 일에 앞장섰고, 때로는 방관한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다같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 주님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권위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사죄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여러분이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나이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55장, 한 처음 어둠이…………………………………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 말씀이 다시 읽히고 선포되는 이 순간에
말씀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어
온전히 그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허탄한 소문으로 흔들리거나
공연한 욕심으로 지친 영혼 위에
진리의 생기를 부어주시어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세상에 계실 동안 치유와 교훈과 선포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출애굽기 17:1-7<오늘의 설교본문>…………………김정은 집사
성시교독: 126, 사순절(3)……………………………………………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5:1-11………………………………………………김정은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16:1-4……………………………………………김정은 집사
설교: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545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3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3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십시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사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지진과 해일로 고통 받는 일본, 내전 중의 리비아, 노숙자, 결식자,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 이혼을 눈앞에 둔 이들, 어려운 병에 걸린 이들, 구타당하는 사람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 예배 후에 정기 교회운영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 28일 저녁 7시에 설교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설교자만이 아니라 성경을 신학과 인문학의 깊이에서 공부하는 싶은 분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비아 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 29일 저녁 8시에 공간울림에서 <대구, 시가 흐른다 Ⅲ, 시편 시편가>가 열립니다. 시편 낭송은 정용섭 목사, 시편노래 지도는 곽민제 신부입니다. 입장료 1만원인데, 샘터교회 교우와 다비안들은 5천원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전남정 전도사에게 신청해주십시오.
* 이번 수요일 시편공부 모임은 시편 낭송회로 대체합니다.
* 이일녀 집사는 서울 출타 중입니다.
* 3, 4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3월- 6일 전은혜, 13일 박경희, 20일 김성곤, 27일 김정은
4월- 3일 정진, 10일 황기, 17일 조정환, 24일 정지예
* 지난주일(3월20일) 헌금: 704,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걷기-
이 세상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은 ‘호모 에렉투스’(직립인)의 후손인 인간밖에 없소. 침팬지, 고릴라, 원숭이 등은 잠시 흉내만 낼 뿐이오. 사람은 태어나서 보통 한 돌이 되면서 걷기 능력이 생기오. 한 사람의 행동 발달에서 이 순간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없을 거요. 세상을 밑에서만 보다가 위에서 보게 되는 순간이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소.
현대인은 걷기를 귀찮아하오. 웬만하면 차를 타고 다니오. 옛날에는 아이들도 주로 걸어서 학교에 다녔소. 시골에서는 하루에 한 두 시간을 걷는 건 예사였소. 지금은 짧은 거리는 모르지만,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없을 거요. 이런 삶의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소. 걷지 않는 습관이 어른이 돼서도 계속 되오. 건강을 위해서 걸어야 한다는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걷는 이들은 많지 않소. 헬쓰 장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하는 분들은 제법 있는 것 같소. 오죽 했으면 그런 장소를 이용하겠소. 사실 그것을 걷기라 할 수는 없소.
걷기는 단지 공간적으로 이동하거나 건강을 위한 것만이 아니오. 걷기 자체가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걷기는 도(道)을 닦는 것이오. 걷기를 통해서 세계를 직면하고, 세계 속의 자신을 경험하게 되오. 세계와의 일치라 할 수 있소. 자동차를 타고는 이런 게 불가능하오. 세상이 스쳐 지나갈 뿐이오. 걷거나 조깅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야만 세상이 살아서 나에게 말을 거는 거요. 요즘 제주도 올레 길 걷기가 유행이라 하지 않소. 스페인의 산티아고 걷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오. 이런 유명한 길을 굳이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걸을만한 곳은 널려 있을 거요.
그대의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금년 한 해 걷기에 나서보시구려. 아니면 조깅을 하든지, 또는 자전거 타기도 좋소. 가능한 혼자서 해야 하오. 머리를 쳐들고 수직으로 꼿꼿이 서서 천천히 움직여 보시오. 인간을 뜻하는 헬라어 ‘안트로포스’도 직립원인을 가리키오. 걸으면서 하늘을 보게 될 거요. 땅에 두 발을 딛지만 땅을 넘어설 수 있게 될 거요. 아주 먼 우리의 조상이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오. 일상 자체가 구도(求道)요. (2010년 1월8일, 토)
-먹기-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기요. 우리가 살아 있으려면 무언가를 먹어야 하오. 먹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겠소? 영양주사를 맞으면 상당 기간은 버텨낼 수 있을 거요. 그러나 그게 계속될 수는 없소. 입으로 먹고 위에서 소화시킨 뒤 작은창자와 큰창자를 통해서 영양을 흡수한 뒤에 찌꺼기를 항문으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살고 있소. 요즘은 위 내시경 검사와 대장 내시경 검사가 건강검진에서 거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소.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문제가 우리의 건강에 결정적인 것이라는 뜻인가 보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오.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소? 어떻게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소? 어는 정도 먹는 것이 맞춤한 것이오? 이런 문제를 일일이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을 거요. 내가 보기에 자기 몸이 알아서 알려줄 것이오. 굳이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자기 몸의 요구에 따르면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먹기를 할 수 있을 거요. 그러니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느라 과민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오. 중요한 것은 먹기를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오. 이 말은 곧 먹기는 도(道)라는 뜻이오.
그대는 절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서 밥을 먹어 보았소? 거기는 설거지라는 게 따로 없소. 각자 밥그릇은 자기가 보관하오. 밥을 다 먹으면 물을 그릇에 넣고 김치 한 조각으로 돌려가며 찌꺼기를 모아서, 그 물을 마신 뒤 마른 헝겊으로 그릇을 닦으면, 그것으로 끝이오. 먹기의 과정이 곧 구도요. 이런 것에 비해서 오늘 세속사회의 먹기는 그야말로 탐욕의 극치라 할 수 있소. 그런 결과가 이번 구제역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르오.
먹기가 인간의 본질이고, 따라서 먹는 행위가 구도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먹기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오. 남을 배려하려면 당연히 자기가 먹을 양을 조절해야 할 거요. 그것이 일용할 양식에 대한 주기도의 가르침이기도 하오. 내 말이 설교 조로 전달되지 않았으면 하오. 어떻게 보면 삶은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오. 단순하게 생각하시오. 먹기만 잘해도 그 사람의 삶이 구도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소. 그게 쉽지 않을 거요. 금년 한 해, 잘 먹으며 살아보시오. (2011년 1월1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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