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2efaade1-adfa-48f1-bf77-f7ea893736ee

4월10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4월10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에스겔 37:1-14/ 여호와의 능력을 보리라!)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기 전부터 직후 10년 동안 활동한 선지자이다. 격동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기이다. 그는 마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민족이 일본의 손아귀에 빠져들었던 운명과 비슷한 일을 목도했다.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력감을 느꼈다. 하나님이 선민인 유대의 몰락을 왜 허락하시는지에 대해서 수없이 물었을 것이다. 앞으로 유대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인지, 유대 민중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지자들은 고난의 역사를 직면한 이들 아닌가. 그런 와중에 그는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 그것이 오늘 설교의 본문인 겔 37:1-14절이다.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에서 지적한 그대로 마른 뼈로 묘사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항목이 더 중요하다. 첫 항목은 두 번째 항목을 말하기 위한 조건이다. 에스겔은 여호와가 능력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다. 마른 뼈가 생기를 얻어 삶을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도 거의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호와의 능력을 보라는 에스겔의 신탁은 옳다. 그러나 에스겔의 선포를 승리주의 신앙으로 호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여호와의 능력을 우리의 희망사항이 이뤄지는 도구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의 능력은 여호와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실현될 뿐이지 사람이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의 전형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본다. 예수의 십자가 운명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들도 예상하지 못했고 헬라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고유한 방식으로 일으키시는 구원 능력에 집중하며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막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우리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 사순절 다섯째 주일을 맞아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여기 모였습니다. 똑같은 일의 반복에 매달리는 우리가 참된 생명을 얻으려면 늘 새롭고 놀라운 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우리의 영혼을 맡기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의 일환이 예배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드립시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19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이 당해야 할 모든 실존적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급기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하심으로

인류 구원의 단초를 시작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신앙의 토대로 삼는 사람들이

지금 한 자리에 모여 당신께 예배를 드리나이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이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서 의에 이르게 하고,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삶 전체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믿나이다.

세포가 분열하고 성장하다가 죽어가듯이

우리의 몸도 똑같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지만

사람의 고난을 그대로 짊어지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궁극적인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게 됨을 믿나이다.

그 믿음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 허무한 세상을 견뎌내며

악을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겠나이까.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의 낮은 자리에 오시어

십자가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부활생명으로 인류의 미래를 담보해주신,

그리고 생명의 완성을 위해서 다시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한없이 우리의 잘못을 품어주시고 당신께 돌아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그 사랑에 의지해서 우리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감히 아룁니다. 우리의 신앙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소서.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뿐이지 실제로 믿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목사: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공급해주셨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더 크고 많은 것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삶을 소진했나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필요 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았나이다.

회중: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인 분별력과 용기를 허락해주소서.

목사: 주님,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지구 곳곳이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수단으로 전락되는 이 시대정신 앞에서 저희는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 주님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권위로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 교회 전통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여러분이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주님의 용서하심을 감사 찬양드리나이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39장, 내가 산을 향하여…………………………………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많은 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그 말씀이 다시 읽히고 선포되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

말씀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어

그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하소서.

허탄한 소문으로 흔들리거나

공연한 욕심으로 지친 영혼 위에

진리의 생기를 부어주시어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세상에 계실 동안 치유와 교훈과 선포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에스겔 37:1-14………………………………………………황기 집사

성시교독 128, 사순절(5)……………………………………………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8:6-11………………………………………………황기 집사

*제3독서 요한복음 11:33-44…………………………………………황기 집사

설교 여호와의 능력을 보리라!……………………………………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189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1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1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십시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사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어려운 이웃들과의 연대를 매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상담이나 심방이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 교우들은 하루에 한 번씩 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온라인 상에서 친교도 나누고 급한 소식을 전달받을 수도 있습니다.

* 수요일 성경공부가 매주 수요일 저녁 8:00-9:00에 공간울림 1층에서 진행됩니다. 지금은 시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공부입니다.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은 참석하십시오. 돌아오는 13일 수요일은 장소를 황정희 집사님이 운영하는 ‘곱배기 냉면’ 식당으로 임시로 옮겨서 그동안의 공부를 복습하고 친교하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시간은 임시로 저녁 7시 30분으로 옮깁니다. 당일만 참석하실 분들도 오셔도 됩니다. 함께 냉면을 먹겠습니다. 그 다음(4월20일)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저녁 8시에 공간울림에서 모입니다.

* 4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3일 정진, 10일 황기, 17일 조정환, 24일 정지예

* 지난주일(4월3일) 헌금: 392,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손톱 깎기-

막내딸이 언제부터인가 손톱을 기르고 있소. 손톱에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하오. 매니큐어를 바르는가 보오. 학생이 손톱 치장을 뭐하러 하니, 하고 물으면 멋있잖아요, 하고 대답하오. 그게 멋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내버려 두고 있소. 큰 딸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작은 딸은 좀 멋을 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

요즘은 손톱 깎기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이나 아버지께서, 또는 누님들이 종종 내 손톱을 깎아주셨소. 도구는 가위요. 큼지막한 가위로 어린 아이들의 손톱을 깎으려면 보통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오. 초등학생이 된 다음에는 내가 스스로 깎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진땀이 날 정도였소. 생각해보시오. 큰 가위를 들고 자기 손톱을 깎고 있는 초등학생을 말이오. 손톱 모양도 들쑥날쑥이고, 살점을 깎을 때도 종종 있었소. 어른들이 밤에 손톱을 깎는 걸 터부시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도 있소. 흐릿한 등불 아래서 잘 들지도 않는 가위로 손톱을 깎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요.

당시 손톱을 깎을 때 가장 어려운 대목이 손톱 옆으로 가시처럼 삐져나온 ‘까시레기’ 처리요. 까시레기는 일본말이오, 우리말이오? 그게 가위로는 처리할 수 없소. 억지로 잘라내려고 하다가 결국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 균이 들어가서 곪는 일이 옛날에는 흔했소. 그걸 생인손(?)을 앓는다 하오. 생인손을 앓으면 밤잠도 못잘 정도로 고통스럽소. 위생도 나쁘고 영양상태도 나빴던 그 시절에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났소. 톡톡 하고 간단하게 손톱을 깎을 수 있는 손톱깎이가 나온 뒤로는 이런 고통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소.

손톱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소중한지는 나보다 그대가 더 잘 알거요. 손톱을 주제로 글을 써도 아마 책 한 권은 족히 될 거요. 대다수 포유동물들은 손톱과 발톱이 무기요. 인간에게도 그런 흔적이 좀 남아 있소. 당해본 사람은 알 거요. 손톱만 봐도 그 사람의 건강을 측정할 수 있다지 않소. 금년 한 해 손톱 잘 깎으면서 건강하게 살아가시오. 손톱의 영성을 위하여! (2011년 1월12일, 수)

 

-씻기-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씻기는 일상이 되었소.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소. 먼지가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매일 씻지 않을 수 없소. 광부나 미화원, 또는 자동차 수리공, 행상 같은 분들이 그렇소. 하루 종일 땀을 흘리거나 먼지를 뒤집어썼을 테니 당연히 씻는 게 좋소. 옛날에는 씻고 싶어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소. 거의 모든 집에는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소. 여름철은 우물가에서 물을 끼얹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겨울철은 겨우 얼굴과 손, 발을 씻는데 급급했소. 나는 어렸을 때 아버님이 씻은 물을 그대로 받아서 씻었소. 따뜻한 물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오. 요즘이야 샤워시설이 없는 집이 얼마나 되겠소. 비데를 설치한 집도 많소. 또 옛날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오. 옛날에는 신문지나 잡지 같은 폐지를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서 뒤를 처리하는 데 사용했소.

땀과 먼지를 씻어내는 거야 위생에도 좋으니 권장할 일이지만, 그것도 정도껏 하는 게 좋지 않을는지. 자기 전에 무조건 샤워를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말해 뭐 하겠소. 전 국민이 샤워나 목욕을 한 번 씩만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도 있을 거요. 몽고 유목민이나 시베리아 에스키모, 또는 티베트 오지의 원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화면으로 볼 때가 있소. 속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화면에 나오는 걸로만 보면 그들은 거의 씻지 않고 사는 것 같소. 물론 그들을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소.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갈 수도 없소.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오. 지나치게 청결한 삶의 방식은 자연과의 불일치로 나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소. 사람의 운명에는 결정적으로 두 번의 씻는 순간이 있소. 하나는 태어나는 순간이오.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 탯줄을 끊은 뒤에 몸을 씻어야 하오. 처음에는 수건으로 양수를 닦아내겠지만 곧 물로 또 씻어야 할 거요. 태아가 언제 쯤 물로 목욕을 하는지는 내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세상에 나올 때 씻는다는 것은 분명하오. 다른 하나는 죽는 순간이오. 장의사들이 시체를 알코올로 깨끗이 닦소. 그것도 일종의 목욕과 같소. 살아있는 동안에 씻는 것은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한 연습이 아닐까 하오. 금년 한 해, 적당하게 씻으며 사시오. 언젠가 마지막으로 씻어야 할 순간이 온다는 사실도 기억하시오. (2011년 1월13일, 목)

주보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