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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사순절 마지막 주일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4월17일, 사순절 마지막 주일

 

오늘의 설교(초)

(마태복음 26:14-25/ 나는 아니지요?)

 

예수의 수난전승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대목의 하나가 가룟 유다의 배신이다. 그 배신이 역사적 사실인지를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정설로 자리를 잡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전승을 통해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배신은 유다만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해당된다. 네 복음서가 이 사실을 적시한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이것에 비하면 유다의 행위는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복음서 기자들은 유다라는 자연인 한 사람의 배신보다는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만연한 배교 행위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 같다.

가룟 유다 전승의 핵심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배교 행위라는 사실을 두 번에 걸친 “나는 아니지요?”라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번은 제자들 전체에 적용된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각각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응한다. 다음은 유다 개인이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유다가 똑같이 반응한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양쪽 모두에게 배신의 잠재적 가능성은 열려 있다.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대의 일반 신자들에게도 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신하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계속 그런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 고민이 가룟 유다 전승으로 표출된 것은 아닌지.

예수의 십자가는 직접적으로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간접적으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배신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더 크게 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을 향한 인류의 배신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단다. 경쟁력 제고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오늘의 신자유주의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순종이자 배신 아닌가. 우리 각자는 이런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으면서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로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비겁하고 야비하고 영악하다. 하나님은 인류의 비루한 역사를 헤치고 구원의 길을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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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은 사순절 여섯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한계를 안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와 신비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22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오직 당신께 영광을 돌리오니 우리의 예배를 받으소서.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사람과 그 이외의 동식물과 지구와 우주 전체를

고유한 능력으로 완성하고 구원하실 분이심을 믿나이다.

당신은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와 똑같은 실존을 짊어지게 하셨고,

무죄한 이들이 당하는 고난의 자리에 앉게 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극한의 시련과 절망과 허무 가운데서도

구원을 희망할 수 있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인류 역사와 우주 역사에 없었나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사실보다

더 놀랍고 신비로운 일도 없나이다.

그 사실을 우리가 들어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셨으며,

그 사실에 우리의 운명을 걸게 하셨으니

우리가 어찌 입을 열어 기쁨으로 찬송 드리고,

중심으로 기도드리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의 낮은 자리에 오셨던,

그리고 생명의 심판을 위해서 다시 우리에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아니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바로 그 엄연한 사실조차도 망각할 때가 많으며, 그 망각의 습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린아이처럼 무조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또한 세상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구하기만 합니다. 영적인 만족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이런 분별력이 없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회중: 주여, 간절히 원하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소서.

목사: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여, 우리 믿음은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믿음과 삶이 철저히 분리되었습니다. 영혼의 성장에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살아온 관성에 따라서 살아갈 뿐입니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도 잃었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해 여겨주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우리 자신의 뜻을 확장하는 것에 모든 삶의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사람과 사회와 자연을 죽이는 힘에 한 통속으로 살았습니다. 생명의 힘을 외면하고 무기력하게 산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다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뢴 모든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용서를 받았습니다. 기뻐하십시오. 이웃을 받아들이십시오.

<회중> 아멘,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바치나이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39장, 내가 산을 향하여…………………………………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많은 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그 말씀이 다시 읽히고 선포되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

말씀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어

그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하소서.

허탄한 소문으로 흔들리거나

공연한 욕심으로 지친 영혼 위에

진리의 생기를 부어주시어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세상에 계실 동안 치유와 교훈과 선포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이사야 50:4-9………………………………………………조정환 집사

성시교독 129, 종려주일………………………………………………목사와 회중

제2독서 빌립보서 2:5-11……………………………………………조정환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26:14-25…………………………………………조정환 집사

설교 “나는 아니지요?”………………………………………………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245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2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2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십시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다음 주일은 부활절입니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가능하면 이웃들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 고난 주간을 경건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CBS의 “새롭게 하소서” 정용섭 목사 편이 아래의 일시에 방영됩니다. TV- 4월21일 목요일 밤 10시(재방 4월22 새벽 4시, 오전 9시30분)

라디오(FM 98.1Mhz)- 4월21일 목요일 밤 8시10분

고난주간 특집으로 된 특강과 짧은 대담입니다.

* 4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담당자는 예배 시간 10분 전에 오셔서 앞자리에 앉아 준비해 주세요. 성경봉독 방법은 교회 홈페이지 주보 메뉴에 나와 있으니 참조하십시오.

3일 정진, 10일 황기, 17일 조정환, 24일 정지예

* 지난주일(4월10일) 헌금: 212,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외계인

 

어느 과학자가, 또는 어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오. 우주에 외계인이 있거나 없거나 두 가지 사실 모두 놀라운 일이라고 말이오. 이게 무슨 뜻인지 그대는 알 거요. 외계인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지금 우리의 생명 경험을 다 바꿔야 할 거요. 우리처럼 단백질로 몸이 구성되고, 산소를 호흡하는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소. 외계인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지구의 인간이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요.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소.

아직까지 우리는 외계인의 존재유무를 확인하지 못했소. 간혹 음모론 수준에서 미국과 영국 정보부가 외계인을 확인했으면서도 그걸 숨기고 있다는 말이 나오긴 하오. 그게 실제로 확인되었다면 숨길 이유는 하나도 없소. 기독교 신앙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까 교황청이 압력을 넣는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상상이오. ET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형체의 물체가 온라인에 나도는 경우도 있긴 하오. 그런 물체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외계인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하오. 지구에 있는 어떤 생물의 변종이라고는 말할 수 있소. 칼 세이건에 따르면 외계인을 보았다는 말은 마리아를 보았다는 말과 비슷하오. 주관적인 체험에 불과하지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는 뜻이오. 대개는 과학적으로 해명이 가능한 어떤 현상에 대한 오해라는 거요. 심지어 유리창에 붙어 있는 곤충을 UFO로 착각하는 수도 있다 하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외계인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소. 내일이라도 나타날 수 있소. 그러나 아직은 아니오.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외계인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계에 대해서 궁금할 거요. 외계인의 등장은 자칫 그리스도교 신앙이 허물어지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소. 유럽의 그리스도교가 시작될 때는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알지 못했고,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도 몰랐소. 성서는 유대민족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과 근동을 전체 세계로 전제하고 기록되었소. 예수님도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아는 게 없었을 거요. 이후로 성서시대의 세계상은 다 허물어졌소. 그래도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너지지 않았소. 외계인 문제로 마찬가지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런 사태를 극복할 거요. 이런 준비를 위해서라도 교회는 늘 신학적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하오. (2011년 1월29일, 토)

 

우주 안에서

 

그대와 나는 우주 안에 들어 있소. 그런데도 우리는 우주의 크기를 모른다오. 자기가 사는 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는 거와 비슷하오. 물리학자들이 대략 말하는 크기가 있긴 한데, 그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오. 무한이라고 하는 게 옳을 거요. 만약 우주의 크기가 있다면 그것 너머는 또 무엇이겠소?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됐고, 그 결과가 현재의 우주라고 한다면, 우주 너머에는 또 다른 빅뱅으로 된 다른 우주가 있다고 말해야겠소? 우주가 무한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오. 무한한 우주라는 개념이 이해가 되오? 우주의 크기에서 우리가 이렇게 혼란을 겪는 이유는 지구에서 경험하는 이런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오. 이런 문제는 골치 아프기도 하고 나도 잘 모르니 그만 하겠소.

내가 알고 있는 한도에서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만 말하겠소. 지금 우리는 태양계에 속한 지구에서 살아가오. 사실 태양계만 하더라도 대단한 세계요. 이렇게 과학기술이 발달됐는데도 인간이 지구의 이웃인 금성이나 화성에 가보지 못했소. 지구의 위성인 달에 갔을 뿐이오. 물론 무인 우주선으로 금성과 화성, 또는 목성에 직접 가거나 가까이 갔소. 직접 사람이 가려면 세월이 한참 지나야할 거요. 토성이나 해왕성에 가보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오. 해왕성은 태양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햇빛이 흐릿하게 보일 거요.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가 1억5천만 킬로미터요. 1초에 30만 킬로미터로 날아가는 빛의 속도로 9분 정도 걸린다 하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 2-3광년이 걸리오. 머리로 계산해보시오. 광속으로 2년이나 3년을 가야 할 그곳에 태양과 비슷한 별이 있소. 그 사이에는 아무 별도 없소. 그대는 은하수를 본 적이 있소. 밤하늘의 별은 촘촘히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떨어져 있소. 그 안에 태양도 들어 있소. 지구는 그 태양에 붙어 있는 행성이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은하수와 같은 별무리가 우주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오. 그대도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자주 들어도 신기하기 짝이 없소.

우주의 별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소. 새로 태어났다가 다시 사라지오. 사람의 운명처럼 별들도 태어나서 적당한 세월을 살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오. 태양도 45억 년쯤 되는 별이오. 앞으로 이런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사라질 거요. 지구는 태양이 사라지기 전에 거성이 된 태양 안으로 빨려 들어가오. 무한한 크기의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정말 장난감에도 미치지 못하오. 태평양에 면한 모든 해변의 모래사장을 우주라고 한다면 지구는 그중의 모래 한 알보다 더 작소. 이 지구에 붙어서 지금 우리는 서로 아옹다옹하오. 벌써 2011년 1월도 마지막 날이오. (2011년 1월3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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