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4월24일, 부활 주일
오늘의 설교(초)
(요한복음 20:1-18/ 막달라 마리아와 부활의 주)
요한복음서에는 부활 전승이 네 번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 제자들, 도마, 일곱 제자들의 경우이다. 이것을 종합한다고 해서 부활 이야기가 완전히 재구성되는 게 아니다. 공관복음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복음서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첫 증인이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부활 전승에서 남자 제자들은 별로 큰 역할을 못했다는 의미이다. 복음서가 전하는 여자들의 이름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만은 일치한다. 그리스도교의 운명이 달린 부활 사건이 한 여자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차원으로 해석된다. 하나는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경험이 당시의 세계관을 외면해도 좋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예수 부활은 어떤 사실, 또는 어떤 사건인가? 당시 세상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1)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치웠다. 빈무덤을 본 마리아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겠나이다.”(요 20:2)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만으로 부활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2) 마리아가 동산지기를 예수로 착각했다.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는 자기에게 말을 거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부활의 증인들을 나열하고 나름으로 부활의 타당성을 논증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의 논증이 복음서가 말하는 부활 전승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의 경험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녀는 자기에게 말을 건 이가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가 ‘마리아야!’ 하고 소리를 듣고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하게 몰랐다. 죽은 이가 이제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를 보았으며, 주께서 자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전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를 ‘본’ 사람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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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2011년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와 죽음의 사슬을 끊고
종말에 주어질 참된 생명으로 변화되신 사건을 기억하고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기쁜 날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생명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159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창조와 부활의 능력이신 여호와 하나님,
당신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의와 생명의 세계로 불러내시어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실 분이시나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불러일으키시어
허무와 탐닉, 또는 무미건조한 삶의 반복에 빠져 있던 우리로 하여금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하셨으니,
우리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럴듯한 말과 생각과 보상심리로 우리를 자극하는,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임시방편이며, 제한적이고, 근본적으로 무능력하나이다.
그런 것에 우리의 영적인 삶을 소진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고 놀랍고 새로운 것에
우리의 영혼을 집중하게 인도하소서.
오늘 부활절을 맞아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종말에 얻게 될 신비로운 부활 생명을 기다리나이다.
그 부활 생명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상의 삶으로 살아가기 원하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죽음의 권세를 굴복시키시고 부활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사랑이 끝없으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부활 생명을 약속으로 받았는데도 여전히 죽음의 유혹에 쉽게 흔들립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해지는 것 같아도 영혼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사람들인데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왜 이렇게 분리되어 있는지,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왜 성령의 능력을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지, 부끄럽습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경쟁력으로만 평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자신의 안일에만 안주하고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들임을 고백합니다.
회중: 주여,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목사: 주님, 지난 한 주간 살아오면서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대하듯이 대하지 못했나이다.
매 순간이 종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마땅히 모든 사람들과 생명을 나눠야 했을 텐데,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었고,
죽음에 이르는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91장, 사랑하는 우리 예수 무덤 속에……………………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당신은 누구시기에
말씀과 세상을 하나로 엮으시나이까.
당신은 얼마나 신비롭기에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나이까.
우리로 하여금 언어의 숨을 쉬게 하시고,
언어로 서로 소통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뜻을 알아차리게 하셨나이다.
지금 우리 모두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오니
우리에게 필요한 한 말씀을 주소서.
세상에 계실 동안 치유와 교훈과 선포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예레미야 31:1-6……………………………………………정지예 교우
성시교독 133, 부활절(1)………………………………………………목사와 회중
제2독서 골로새서 3:1-4……………………………………………정지예 교우
*제3독서 요한복음 20:1-18…………………………………………정지예 교우
특별찬송 …………………………………………………………………정진 집사
설교 막달라 마리아와 부활의 주…………………………………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167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1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164장 1절…………………………………………………………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 예배를 마쳤으니
이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십시오.
거기서 부활 생명을 모든 이들과 나누며,
평화와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예배 후에 운영위원회 정기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 가정 예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첫 번 모임은 5월 28일 저녁 6시 안경모 전은혜 집사 가정에서 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6월(25일)은 신광혜 오임경 집사 가정입니다.
* 설교공부 4월 모임이 4월25일 저녁 7시에 본교회 예배처소에서 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비아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 5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담당자는 예배 시간 10분 전에 오셔서 앞자리에 앉아 준비해 주세요. 성경봉독 방법은 교회 홈페이지 주보 메뉴에 나와 있으니 참조하십시오. 앞으로 성경봉독에 관련된 사항은 전남정 전도사에게 문의해주세요.
1일 강태주, 8일 김태성, 15일 안경모, 22일 정지은, 29일 김종성
* 5월 성서일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일 부활절 둘째주일 행 2:22-32벧전 1:3-9 요 20:19-31
8일 부활절 셋째주일 행 2:36-41벧전 1:17-23 눅 24:13-35
15일 부활절 넷째주일 행 2:42-47벧전 2:1-10 요 10:1-10
22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행 7:55-60 벧전2:18-25 요 14:1-14
29일 부활절 여섯째주일 행 17:22-31벧전 2:13-22 요 14:15-21
* 지난주일(4월17일) 헌금: 1,815,000원
매일묵상(‘다비아’ 마가복음 묵상에서)
그는 살아나셨다(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가 두었다가(16:1)
우리는 마가복음 묵상의 긴 여정 끝에 마지막 단락에 당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묵상은 바로 이 단락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막 16: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마가복음의 보도입니다. 중요한 사본 대다수에는 막 16:9-20절이 없습니다. 또는 한글 개역개정 역처럼 괄호로 묶었습니다. 거의 모든 신약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듯이 이 부분은 부활 전승이 교회에 보다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뒤에 보충된 것입니다. 원래의 마가복음은 일단 16:1-8절로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정쩡합니다. 여성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시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에게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갈릴리로 가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들은 몹시 놀라 떨며 무덤에서 도망 나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여성들에게는 부활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마가복음의 보도는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 아무런 해석도 가미되지 않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기 기독교 안에 신학적으로 정리된 부활에 대한 전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이야기가 마가복음에 추가된 것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사정을 염두에 두고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고 있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경험을 따라가 봅시다.
위 구절은 안식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 직전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위 구절이 가리키는 시간은 토요일 저녁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매장된 뒤로 만 하루가 지난 것입니다. 세 명의 여성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바르기 위해서 향품을 사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살아나셨다(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가 두었다가(16:1)
부활은 단순히 우리가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에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들은 부활을 중심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역시 부활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부활이니까요. 심판도 역시 부활에서 영적 현실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심판은 부활 생명이 아닌 것들이 제거되는 사건이니까요. 부활을 빼놓고는 기독교 신앙이 아예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부활의 가장 원초적 전승에 세 명의 여성 제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매장하던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는 세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이 요셉의 어머니는 야곱의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전승은 이 세 명의 여성 제자들을 빼놓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부활 경험자들에 대한 다른 전승들도 있긴 합니다. 엠마오 두 제자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눅 24:13-35) 또 열 한 명의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전승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마 28:16-20, 막 16:14-18, 요 20:19-23, 행 1:6-8) 바울의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부활 목격자에 대한 목록이 나옵니다. 게바, 열 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이 순서대로 나옵니다.(고전 15:5-8) 여기에는 이상하게도 여성 제자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네 복음서가 일치해서 전하고 있는 여성 제자들이 바울의 편지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훗날 바울에게 물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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