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5월29일, 부활절 여섯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사도행전 17:22-31/ 부활은 심판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철학의 도시인 아덴에 가장 처음으로 복음을 들고 간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그곳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닥치는 대로 논쟁을 벌였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은 바울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탓인지 바울을 데리고 당시 유명한 법정인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갔다. 바울의 연설이 22-31절에 나온다. 이 내용은 당대 최고 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심으로부터 변증을 시작한다.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단을 만들 정도로 종교심이 강했다고 한다.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그 신을 전하겠다고 설명한다. 27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28절) 문제는 사람들이 더듬어 찾는 그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나 용납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제 새롭고 결정적인 증거를 주셨다. 그 증거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사건이다.
부활이 어떻게 심판이라는 말인가?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역이다. 무죄한 이들의 고난과 죽음의 극치이다. 부활은 하나님이 배타적이고 고유한, 즉 종말론적 방식으로 인간의 반역을 해체한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표면적으로 풍요로운 것 같지만 오히려 죽음을 열매로 맺는다. KAIST 학생이 금년 들어 4명이나 자살했다. 정부는 생명의 젖줄인 강을 기술공학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곳곳에서 삶의 의미가 실종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부활의 영성을 삶의 토대로 삼을 것인가?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을 절대화하지 않는 삶의 태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각자가 더 깊이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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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은 바로 우리 삶의 근거이며 목표입니다. 부활을 향한 희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합니다. 우리 함께 부활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로 예배드리겠습니다. 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24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희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믿음의 식구들이
이 세상의 모든 일상을 잠시 접어둔 채
온전히 당신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여기 모였나이다.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세상살이가
아무리 척박하고 허무하며,
때로는 힘에 넘쳐서 감당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기쁨과 평화와 승리를 노래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모든 악과 허무와 죽음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굴복되었다는 사실을
영혼 깊은 곳에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으로 예민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오니
성령이여, 저희와 함께 해 주소서.
지금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어느 한 사람도 영적으로 소외되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인도하소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부활의 주가 되신,
마지막 때 세상을 심판하러 우리에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아예 그런 노력조차 포기할 때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긍휼이 아니면 우리는 숨을 쉴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보고 살았습니다.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많은 것을 잃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삶의 과정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믿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만 삶을 평가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어리석었음을 고백하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우리는 이 지구에서 손님인데도 주인처럼 행세했습니다. 세상에서 잠시 살다가 떠나야 할 피조물인데도 영원히 머물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주님이 선택을 받은 사람들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을 외면했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다른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54장, 창조주 하나님…………………………………………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 우리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영혼의 귀를 열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았나이다.
달콤하기는 하나 허튼 소리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를
진리의 영인 성령으로 치료하시어
바른 말씀을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말씀을 받들어 읽는 이와
말씀을 해석하여 전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하나 되게 인도해주소서.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와 축귀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사도행전 17:22-31…………………………………………정지은 교우
성시교독 52, 시편 119편……………………………………………목사와 회중
제2독서 베드로전서 3:13-22…………………………………………정지은 교우
*제3독서 요한복음 14:15-21…………………………………………정지은 교우
설교 <부활은 심판이다>………………………………………………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165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0장3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국악찬송 4장, 영광누리소서(1)……………………………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다음 주일(6월5일)은 교회 창립 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모두 함께 참여하는 귀한 예배가 되었으면 합니다.
* 교우 전화 명부가 필요한 분은 전도사에게 말씀해주세요.
* 예배 후에 정기 운영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 매주 수요일 저녁 8:00-9:30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 대구샘터교회, 서울샘터교회, 대구성서아카데미 연합 여름수련회가 작년과 같은 장소에서 8월26일-28일(금-주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 6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5일- 김태형, 12일-하해숙, 19일-이선영, 26일-신광혜
* 지난주일(5월22일) 헌금: 1,300,000원
매일묵상(‘다비아’ 마가복음 묵상에서)
그는 살아나셨다(8)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16:5)
어제 묵상에서 천사는 바로 고대인들의 하나님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은 확실한 겁니다. 확실하지만 직접적일 수 없는 하나님 경험을 고대인들은 천사를 매개로 설명했습니다.
위의 설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체 역사를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다만 그분은 우리를 찾아오십시오. 그걸 우리는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 계시가 곧 하나님입니다. 신학적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드러남이지 다른 어떤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경험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단 접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견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존재유비(analogia entis)가 불가능하다는 칼 바르트의 말은 옳습니다. 본문에 천사는 바로 그런 사태를 문학적 수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상적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큰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위 구절에서 여성 제자들도 천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또는 어떤 힘에 사로잡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천사를 경험할까요? 이는 곧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그 결과에서 나타나는 공통되는 현상은 생명의 깊이로 인한 놀라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경험은 놀라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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