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7월10일, 성령강림절후 4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창세기 25:19-34/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야곱의 출생설화와 팥죽으로 장자 명분을 샀다는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이 두 이야기에서 야곱의 인간성은 별로 인정받을만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것이나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는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샀다는 것이나 모두 비인간적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설화를 통해서 보더라도 야곱과 에서를 비교하면 에서가 훨씬 더 인간적이다. 둘 사이의 평화를 먼저 깬 이는 야곱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 인물이나 민족에 대한 성서의 평가는 도덕성이 아니었다.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택은 일방적인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 9장에서 다루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 말1:2)라거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5)는 진술은 하나님의 선택이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더 심한 표현도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바울은 토기장이를 비유로 든다. 질그릇은 토기장이에게 불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렘 18장 참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출애굽기 기자의 진술도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이런 말씀을 신앙적인 자기 합리화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행위가 우리의 기준을 넘어선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독재자처럼 인간을 통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가의 여부다. 하나님께 영혼을 기울이면서 사는가의 여부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그것은 장자의 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가의 여부다. 에서는 배가 고프다는 현실에 마음을 빼앗겨서 장자라는 명분을 하찮게 생각했다. 거꾸로 야곱은 비록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장자의 명분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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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을 포함해서 한 평생의 삶이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고백하고, 그 은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식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기쁨을 안고 모두 일어나서 찬송가 23장을 부르겠습니다.
*찬송 23장…………………………………………………………………………… 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오직 하나님께 맡기나이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소유하게 될 것들,
그리고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이 보이는 것들과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밖에서는 허무에 떨어질 뿐임을 알고
우리의 미래를 오직 당신께만 맡기나이다.
하나님은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내일도 계시고,
영원무궁하게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미래임을 믿나이다.
당신은 태초에 혼돈 가운데서 모든 사물과 생명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신비한 방식으로 모든 세계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종말에 모든 생명을 완성하실 분이시나이다.
지금 우리가 무상하고 잠정적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 안에 놓여있으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성령의 위로를 받고 있나이다.
매일의 삶이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 원하오니
우리를 당신의 강한 팔로 붙들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와 긍휼이 한없으신 하나님, 저희에게 지금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당신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죄와 교만으로 인해서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목사: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따를 때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겠다고 말은 하지만 오히려 악령의 종처럼 살아갈 때도 많습니다. 창조주를 섬기는 게 아니라 피조물을 섬기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목사: 주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빈익빈부익부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법이 사람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나이까.
회중: 주여,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는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하나님의 선물인 일상을 충실하게 지켜내지 못했나이다. 너무 많은 것에 우리의 관심이 분산되어 정작 삶에 관계된 일을 외면했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다같이: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가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자비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앞에 나올 수 있으며, 감히 사죄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자비에 의지해서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으니, 기뻐하시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48장,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도다…………………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진리와 생명의 주님,
우리를 부활 생명의 세계로 끌어주기 위해서
모든 거룩한 말씀들이 기록되게 하셨으니
이 시간 허탄한 것에 기울어지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함께 말씀을 읽고, 보고, 전하고 들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충분히 소화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시고 허락하신
복된 생명을 붙들게 하소서.
로고스로 창조 때 이미 계셨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창세기 25:19-34……………………………………………김성곤 집사
성시교독 52, 시편 119편……………………………………………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8:1-11………………………………………………김성곤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13:1-9……………………………………………김성곤 집사
설교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435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0장3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5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여러분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쁜 일만이 아니라 슬픈 일도,
쉬운 일만이 아니라 힘든 일도 만날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예배의 기쁨을 잃지 마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여름 연합수련회는 8월26일(금)-28일(주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장소는 작년과 똑같이 충청남도 목소리 테마파크(http://www.moksori.net/)입니다.
* 대구샘터교회가 예배처소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울림에서 7월 11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로 가는 음악여행’이라는 음악캠프가 열립니다. 좋은 음악연주회가 여러 번 열리는데, 저희 교우들은 가능하면 마지막 날 토요일 저녁에 열리는 ‘러시안 나이트’에 함께 가려고 합니다. 원하는 분들은 전도사에게 말씀해주세요.
* 수요성경공부는 7, 8월에 쉽니다.
* 2011년 하반기(7월-12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1주: 황기, 2주: 김성곤, 3주: 전은혜, 4주: 곽영미, 5주: 서혜빈
* 지난주일(7월3일) 헌금: 1,099,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인용)
천지
창 1:1절 말씀이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하시니라.” 천자문의 시작도 ‘하늘 천(天), 따 지(地)’라 하오. 고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과 땅을 우주 전체로 보았소.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좀 유치하긴 하오. 원래 하늘은 따로 있는 게 아니오. 온 세계가 하늘이오. 무한히 큰 공간이오. 물리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게 지금 계속해서 확장된다고 하오. 그것을 우리가 실제로 느끼기는 힘드오. 우주가 늘 그대로 있는 것 같이 보이오. 북극성은 늘 거기서 빛나고, 달도 기울었다가 찼다가 하면서 늘 그대로 있소.
고대인들은 지금 우리 일반인들이 보는 그런 우주 현상만을 경험했을 거요. 하늘과 땅과 지하의 세계로 보았소. 삼층의 우주관이오. 그들에게 하늘은 정말 신비가 가득한 세계였소. 무한히 넓고 먼 그 세계가 도대체 뭐란 말인지. 구름이 밀려오고, 비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푸른 하늘이었다가 붉은 하늘이 되기도 하오. 때로는 유성이 떨어지기도 했소. 그곳에 천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만하오. 지하도 그렇소. 고대인들은 지진과 화산폭발을 보면서 지하를 다스리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소. 음부의 세계요. 그런데 놀랍게도 헬라의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는 좀 일찍 철이 들은 것 같소. B.C. 400년경에 이미 지구가 구형(球形)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오. 이집트의 에라토스테네스는 B.C. 200년경에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냈는데, 그 계산 원리는 지금의 것과 같다고 하오. 이런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세상이 하늘과 땅과 지하의 삼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은 모든 세계를 창조했다는 뜻이오. 모든 세계라는 말을 기억하시오. 여기서 예외는 없소. 놀라운 발상이오. 땅의 것들은 무언지 알 수 있지만 하늘의 것은 알지 못하오. 그것까지 하나님이 지으셨소. 모르는 세계까지! 지금 온 우주의 깊이를 우리는 다 알지 못하오. 아는 게 별로 없다고 말하는 게 옳소. 앞으로 이 세계에 무엇이 나오고 무엇이 사라질지 아무 것도 모르오. 그 모르는 것까지 다 하나님의 것이오. 우리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오. 세상을 그대의 눈으로 판단하지 마시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쉽게 판단하지 마시오. 혹시 그대는 악도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냐고 묻고 싶소? 그것은 내일 말하겠소.
악의 기원
어제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해야겠소. 악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냐, 하는 질문이오. 사실은 이것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대답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오. 악은 하나님의 본성과 대립되는 힘이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지만 악은 빈곤하게 하고 결국 파괴하오. 하나님이 악을 만들었다고 말하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오. 그렇다고 악을 만든 신이 따로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주라는 근본 명제가 허물어지오.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장면이 나오오. 뱀이 등장해서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하오. 그 뱀이 어디서 온 거요? 만약 하나님이 만드신 거라고 한다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대한 책임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고,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만이 창조주라는 신앙이 허물어지오. 위에서 한 이야기의 논리와 똑같소.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시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명제 사이에 어떤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오. 성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창조자는 없다는 사실을 어느 한 순간도 간과하거나 유보하지 않소.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오.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이 나오는 거요. 악은 하나님이 직접 만든 게 아니지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느 창조주가 만든 것도 아니오. 이 모순을 성서는 억지로 그럴듯한 논리로 풀려고 하지 않소. 가끔 악마는 타락한 천사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현실에 악은 등장했소. 이상한 일이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소. 악이 있어야만 선도 가능하니 결국 악도 선에 속한다고 말이오. 우리가 지금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악도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순종하는 것이오.
결론은 다음이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오. 하나님이 악을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창조의 능력 안에서 들어 있소. 우리는 악이 어떻게 창조의 능력 안에서 조화를 이룰지 알지 못하오. 영적으로 여전히 어린아이이기 때문이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이오. 악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는 우리를 속일 뿐이지 우리를 파괴하지는 못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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