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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7일/ 성령강림절후 5째 주일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7월17일, 성령강림절후 5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마태복음 13:24-30/ 악을 대하는 태도)

위 본문은 소위 ‘가라지의 비유’다. 정확하게 말하면 천국의 비유다. 천국의 비유는 마 13장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천국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세계이기에 아무도 실증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비유가 최선이다. 그래서 예수는 천국을 비유로만 말했다.

이 비유에서 일단 천국의 속성을 읽을 수 있다. 그 나라는 심판을 통해서 구현된다. 그 심판은 진리와 거짓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사건이다. 생명과 거짓 생명이 구분되는 사건이다. 하나님과 일치되는 사건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직 추수 때가 아니기 때문에 가라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비유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현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들 안에 가라지와 같은 부류가 들어왔다. 원수의 짓이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세력이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들을 배제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이 비유는 이런 분파주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분파적 행동으로 인해서 결국 곡식으로 분류될만한 신자들도 떨어져나갈 수 있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곡식과 가라지 사이에 겹쳐서 신앙생활을 한다. 복음과 비복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가르기도 힘들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악과 더불어서 살아간다. 그게 세상이며 현실이다. 악이 선명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흐릿해 보이기도 한다. 악과의 투쟁을 너무 앞세우는 것은 악에 속하지 않은 많은 이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근원적으로 개인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가라지와 알곡이 동시에 들어 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겠나? 완전히 선한 것만을 따라갈 수도 없다.

본문의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로 악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도 악은 실재한다. 그 어떤 나라와 그 어떤 공동체에도, 심지어 수도원에도 가라지는 자란다. 악의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악의 준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항할 뿐만 아니라 악이 괴멸될 마지막 때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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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다섯째 주일입니다. 8월말까지 성령강림절 절기가 계속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규정하는 생명의 영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입니다. 성령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18장…………………………………………………………………………… 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고유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놀라운 권능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완성하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예배를 드리나이다.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실 분이시며,

영적인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분이시나이다.

창조주가 아닌 분이라면 예배할 수 없으며,

영광스러운 분이 아니라면 찬양을 드릴 수 없고,

권능을 행사하는 분이 아니라면 기도를 바칠 수 없나이다.

특히 우리가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이유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그 이전까지 멀고 막막했던 하나님을

이제 구체적으로 알고 믿게 되었으며,

역사에서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이나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거기에 운명을 걸고 사는 우리가

어찌 감사의 찬양을 부르지 않을 수 있겠나이다.

자비로우신 주여, 간절히 바라오니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해서 저희의 죄를 고백합니다.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사로잡혀 살았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목사: 이 나라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노동현장에서, 군대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맹목적인 폭력으로 부장한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살아가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에게 위로와 용기를 허락해주소서.

목사: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지도 모를 때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요구에 너무 깊숙이 길들여진 탓에 영적인 귀가 무뎌졌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는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하나님의 선물인 일상을 충실하게 지켜내지 못했나이다. 너무 많은 것에 우리의 관심이 분산되어 정작 생명에 관계된 일을 외면했나이다. 저희를 불쌍해 여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막 2:5)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36장, 할렐루야…………………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오, 주 하나님,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 되나이다.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주님의 진리를 받아 깨우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어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게 하소서.

말씀을 읽는 자와 선포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말씀이 주시는 생명의 광휘에 휩싸여,

말씀의 풍요로운 잔치에 참여하기 원하나이다.

창조 때 이미 로고스로 존재하셨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창세기 28:10-19……………………………………………전은혜 집사

성시교독 60, 시편 139편……………………………………………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8:12-25………………………………………………전은혜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13:24-30…………………………………………전은혜 집사

설교 <악을 대하는 태도>……………………………………………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312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1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1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여러분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쁜 일만이 아니라 슬픈 일도,

쉬운 일만이 아니라 힘든 일도 만날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예배의 기쁨을 잃지 마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정용섭 목사는 17일 서울샘터교회 예배 인도와 18일 설교공부 강의 일로 이틀 간 출타합니다.

* 지난주일(7월10일) 헌금: 943,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인용)

 

창조

 

다시 창세기 1장1절이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는 단순히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오. 창조 능력은 하나님께만 주어진 능력이지 사람에게는 없소. 예컨대 어떤 과학자가 거의 사람에 가까운 로봇을 만들었다 생각해보시오. 그것은 창조가 아니오. 이미 주어진 어떤 사물에 기술을 통해서 변형을 준 것뿐이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창조는 아니오. 유전공학자들이 줄기세포를 통해서 사람을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것도 창조는 아니오. 이미 사람이라는 종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뿐이오.

창조는 모양과 성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을 생산해내는 능력이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가리키오. 무(無)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시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경험할 수는 없소. 이미 이렇게 유(有)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오. 무의 차원과 유의 차원은 전혀 다른 거요. 이는 마치 사이버의 세계와 지금 실제 세계와 다른 것과 같소. 보시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만 하고, 산소를 들이마셔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소. 공간을 통해서만 사물을 확인할 수 있소.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무가 무엇인지는 유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경험 불가인 셈이오.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소. 색은 가시적인 세계를, 공은 비어 있는 세계를 가르키오. 우리의 오늘 주제와 연결하면 공은 무이고, 색은 유요. 변화무쌍한 이런 세계가 결국은 없는 것이라는 뜻이오.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오. 일단 있는 건 분명하오. 그러나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있다고 해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연관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오. 물이 여기에 있소. 물은 색이오. 그러나 물은 증발하오.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내려오오. 물, 수증기, 구름이라는 실체는 변화하고 있을 뿐이오. 그러니 색은 공과 마찬가지오. 이걸 거꾸로 말하면 공즉시색인데, 의미는 똑같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곧 있음과 없음을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단순히 세상을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오. 창세기 기자는 지금 보이는 세상 그 너머를 생각한 것이오. 이 세상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까지를 거꾸로 돌아본 거요. 거기서 세상을 창조한 분이 하나님이오. 하나님만이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오. 사도신경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소. 전능이 아니면 창조는 불가능한 거요. 그분만이 전능한 분이오. 전능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오. 인간은 하나님의 전능을 꿈꾸지만 그것은 아예 불가능한 꿈이오. 그런 꿈은 늘 실패했으며, 따라서 백일몽에 불과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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