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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 (행 2:42–47 , 요 17:21)

2025년 6월 1일 예배영상 https://www.youtube.com/live/dFAV3B3-toc?si=5y7NV8p6xJU3qMwa

▣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는 대구샘터교회 스물두 번째 생일을 맞이합니다. 저는 2년 반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을 이 교회에 몸담고 있지만, 많은 위로와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작성하신 설문지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 아픔과 슬픔, 아쉬움과 자부심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힘겹고 어려운 시간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잘 이겨내셨고 그래서 우리 교회공동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눈물과 기도, 상처와 회복이 한올 한올 엮인 공동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상처받고, 함께 기다리고, 함께 다시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당신은 교회를 다니십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장소와 이름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요? “당신은 교회입니까?” 질문이 낯설지요?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받아보신 적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존재의 조건 아래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존재의 공동체이다.”(틸리히, 『조직신학』) 교회는 모든 존재의 기반이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를 사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하나님과 이웃과 세계와 맺는 관계 그 자체입니다.

 

▣ 관계를 짓는 공동체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가장 본질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말씀과 교제, 식탁과 기도, 이 네 가지가 기억과 관계를 통해 엮인 신앙 공동체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단지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향하는 존재들입니다. 말하자면, 신앙 공동체란 타인의 존재를 나의 구원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대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에베소서 말씀은 우리가 외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제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는 모퉁잇돌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 이 표현은 교회를 움직이지 않는 석조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 함께 지어져 가는 관계적 실체로 묘사합니다. 관계를 통해서 온전한 성전, 교회가 되어간다는 것이지요.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관계를 짓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건물만 오가고 있는가?

 

▣ 교회는 sign이다.

우리 교회도, 어느 공동체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때 분열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 있었지만, 마음은 멀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눈물은 우리 공동체를 더 아름답고 단단하게 빚게 될 것입니다. 고통 자체나 고통의 시간을 없앨 수는 없지만,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본회퍼는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교회의 본질이라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 그 자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증거로서 세상 한가운데 서 있는 표지판이다.”(본회퍼)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교회로서의 삶을 살아내려 할 때, 그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sign이 될 것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라고 주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음을 지시하는 표지판입니다. “교회는 이미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형성되고 갱신되어야 하는 존재이다.”(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그런 표지 역할을 위해 우리는 변화와 변혁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표지(sign)”이지 “성역(sanctuary)”이 아닙니다. 함께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교회는 특정 장소(건물)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랑과 정의, 진리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 교회는 사건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을 품고 있듯, 서로를 품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은 우리가 교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한스 큉은 교회를 정적인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즉 하나님의 계시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일어난 실재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동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그런 살아 있는 관계, 역동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는 날마다 갱신되어야 하고,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됩니다. “교회는 이미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말씀 안에서 늘 새로 태어나는 살아 있는 공동체이다.”(한스 큉) 우리 교회가 하나님과 만남,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세계와의 만남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자리가 되길 기도하고 바랍니다.

 

▣ 나가는 말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를 특정한 건물이나 행사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팬데믹과 같은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물어야 했습니다. “예배당이 닫혔을 때,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교회는 건물 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존재 속에 있다.” 건물은 닫혔을지 몰라도, 교회는 결코 멈춘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병상 위에서 서로를 위해 애쓰며 기도할 때, 가난한 자의 곁을 찾아 음식을 나눌 때, 억울한 이들과 함께 울며 침묵할 때 그곳이 곧 교회였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말합니다. “사람이 희망을 잃는 순간은 언제나,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질 때다.” 성서적 인간실존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견디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건너온 자들의 연합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셨던 이유도, 바로 그 ‘기억’을 우리 몸 안에 새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물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곧 “우리는 누구인가?” 덧붙여,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로 이어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사랑의 연습장이며,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는 예언자적 공동체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꿈을 이 땅에 구체화해 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모습을 고민하며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교회라는 ‘존재’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주일마다 반복되는 ‘형식’을 소비하고 있는가?” 아울러 “우리 공동체는 세상을 향한 표지(sign)로 기능하고 있는가?” “교회는 내게 어떤 사건이며, 어떤 관계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기억을 안고 있지만, 같은 미래를 함께 만들 책임도 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나누고, 말씀을 듣고, 서로의 고백을 들으며 이 공동체가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가진 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예배가 눈물로 다시 손을 잡는 순간이 되기를, 감사로 다시 길을 걷는 시작이 되기를, 주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은혜의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같은 소망을 바라보는 공동체입니다.”

아멘.(다함께)

 

 

“교회의 하나님,

우리를 부르시어 교회 되게 하시고,

서로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배우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건물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로 세상 속을 걸어가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

하나님 나라의 표지로 존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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