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의 약속을 기억하라
(수 24:14-18)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의 후계자이다. 모세는 출애굽의 장본인이다. 그가 이룬 업적은 정치, 군사, 종교의 차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없었다면 그의 업적도 빛을 잃었을지 모른다. 모세는 출애굽을 이뤄냈지만 궁극적인 목표인 가나안 입성은 이뤄내지 못했다. 그는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죽었다.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삼고, 가나안 정복에 대한 사명을 부탁했다. 여호수아는 그 일을 이뤄냈다. 홍해를 가른 모세처럼 그는 요단강을 멈추게 했으며,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는 일까지 마쳤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각 지파 대표자들을 세겜에 모아 놓고 유언을 남겼다. 그 내용의 한 대목이 오늘 설교 본문이다.
1. 세겜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1)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곳(창 12:6), 2)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을 노략질한 사건이 일어난 곳(창 34장), 3) 야곱은 이방 신상과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창 35:4) 4) 르호보암은 세겜에서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북쪽 지파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왕국이 분열된다.(왕상 12장) 이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둠으로 여호수아의 유언은 강한 의미를 지닌다.
2. 여호수아는 지파 대표자들에게 여호와만 섬기든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기든지 하라고 요구한다.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늘 여호와 하나님만 섬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여호수아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본문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본문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기록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본문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사실보다 훨씬 후대에 기록된 문헌이다. 구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본문은 바벨론 포로기에 기록된 것이다. 바벨론 포로시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깊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위태로워졌다. 일제 치하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논리이다. 처음에 항일, 반일운동에 앞장섰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부일로 돌아섰다. 유대인들도 포로기를 거치면서 바벨론의 마르둑 신앙에 매료되거나, 이민족과 결혼하거나, 그들과의 동업하는 일이 많아졌다. 남북 지파의 일치는 무의미한 일이고, 오직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거세졌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 시대가 계속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들을 향해서 본문을 기록한 이들은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서 선택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냐, 아니면 이방 신이냐?
3.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수 24:16) 그 이유는 여호와가 바로 출애굽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다. 세 가지로 여호와의 정체를 설명한다. 1) 큰 이적을 행하신 분, 2) 우리를 보호하신 분, 3)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신 분이다. 바벨론 포로라는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이런 하나님을 언급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둠의 시절에 빛을 말하는 신앙이다. 영적인 시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진술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바로 참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일어난 부활을 모른다면 이런 신앙은 불가능하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세겜의 약속이 아닌가. (2009년 12월31일, 송구영신예배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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