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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

(사 52:3-10)


이사야 52:3-10절은 두 대목으로 구분된다. 1) 3-6: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과 그 내용에 대한 진술. 2) 7-10: 앞 구절의 내용을 전하는 이의 역할에 대한 설명.


1) 3-6절의 특징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문장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네 번이나 반복된다. 이 세상의 역사를 결정하는 절대적 권위가 바로 거기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다. 칼 바르트도 “Deus Dixit”를 아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가 세상의 창조자이다. 그에게만 참된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우리 인간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이 홀로 말한다는 것이다. 시인들은 언어가 말을 거는 걸 듣는 이들이다. 예술가들도 소리로부터 어떤 걸 듣는다. 시인이 말을 하거나 예술가가 스스로 창조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영적인 귀를 열어야 한다. 하나님만이 홀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속량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이스라엘은 값없이 팔렸고, 까닭 없이 잡혔다. 이스라엘 역사에 일어난 두 가지 큰 고난을 가리킨다. 이집트에서 수백 년 동안 소수민족으로 살았다는 것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말한다. 이집트와 바벨론은 당시 최고의 제국이었다. 그 제국들의 행위를 이사야는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혔다(사 52:5)로 표현한다.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세력은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이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해내는 날에 그 제국들은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내가 여기 있으니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사 52:6) 놀라운 고백이다.


2) 7-10절은 앞 구절에서 선포한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52:7) 여기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은 위 구절의 특징인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와 똑같다. 하나님은 말씀과 통치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그의 말은 곧 통치 행위이고, 그 통치는 그의 말씀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허물어지도록 내버려두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현실을 보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은 너무나 거리가 먼 것 같은 말이다. 자신들에게 고난이 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통치를 현실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 거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았다.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할 뿐이다. 하나는 종교적 업적을 쌓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난의 역사에 절망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는 현실성으로 경험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은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미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모든 영적인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통치는 구체적으로 “그의 백성을 위로”하고 “예루살렘을 구속”하는 것이다.(9절)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이다.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가 주어진다는 위로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신적 고향이다.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킬 땅이다. 참된 위로와 구속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통치하시는 하나님만이 홀로 행할 수 있는 구원 사건이다. 이사야는 “땅 끝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증언한다.(사 52:10) 놀라운 영적 시각이다.


4) 우리는 기원전 6세기에 선포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그가 오신 날이 성탄절이다. 따라서 이 날은 온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귀한 날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가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된 날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자신의 인생이 여전히 어둡다고 생각되는가? 절망적이라고? 구원의 빛이 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라. 만약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감고 있는 것이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이며 구속이다. 그를 소리 높여 찬양하자. (2009년 12월25일,  설교 요약)

이사야 5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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