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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mms://61.100.186.211/pwkvod/dawp/dawp_081019.wmvmms://wm-001.cafe24.com/dbia/dawp_081019.mp3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2008.10.19. (신 34:1-12)

모세라는 이름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모세를 모르는 사람은 세계 역사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아닌 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유명한지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따로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출애굽입니다. 출애굽기의 전승에 따르면 모세는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파라오의 공주에게 입양되어 마흔 살 될 때까지 왕궁에서 살았고,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광야로 망명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간 양을 치며 살다가 호렙산의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와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광야로 나옵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팔십이었다고 합니다.
광야에서의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자그마치 40년을 거기서 방황했습니다. 성인 남자들의 걸음걸이로 보름,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달이면 충분히 통과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그 길을 4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광야 40년 세월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는지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특히 백성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모세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입술이 타들어가는 세월이었을 겁니다.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도부에서도 옥신각신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40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을 바로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감개무량했겠지요. 그런데 모세는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가나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34:1-12절의 말씀입니다.

느보 산에서
모세는 모압 광야에서 여리고 성 맞은편의 느보 산봉우리에 올라갔습니다. 모압은 사해 동편이고 느보 산은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데, 요단강을 중간으로 해서 왼편에 여리고 성이 오른편에 느보 산이 있습니다. 느보 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면 요단강 좌우의 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넓은 지역을 본 모세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 준다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신 34:4)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모세가 지난 40년 동안 견뎌온 그 수고를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당연히 요단강을 건너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발을 디뎌야 하는 게 순리 아닐까요? 모세의 나이가 이미 120살이 되었으니 요단강을 건널 기력이 없는 게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 아닙니다. 본문 7절에 따르면 모세는 그 순간까지 정정했다고 합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은 다른 대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민수기에 따르면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기를 회중이 보는 데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많이 나왔고, 회중과 짐승들이 마셨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야훼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말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지팡이로 친 것이 잘못인지, 아니면 한 번만 쳐야 하는데 두 번 친 것이 잘못인지, 그 순간에 화를 낸 것이 잘못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습니다.(민 20:1-13)
민수기 기자의 이런 설명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크게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서를 구하면 모두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작은 실수를 트집 잡아서 40년 동안 기다려온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민수기 기자가 이렇듯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설명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을, 밝히기 곤란한 어떤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위인들은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성서의 신앙적인 영웅들도 그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모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민수기 기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지적한 게 아닐는지요.
민수기 기자와 달리 신명기 기자는 그 책임을 모세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신명기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신 4:21절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모세에게 진노를 내리셨으며, 결국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우상숭배였습니다. 모세에게 책임이 있다면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막지 못한 것이겠지요. 결국 모세는 백성들의 책임을 대신 뒤집어 쓴 것입니다. 신명기 기자는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신 4:26) 그렇다면 망할 땅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모세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일지 모릅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똑같은 사건을 놓고 민수기 기자와 신명기 기자가 왜 서로 다른 말을 할까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민수기나 신명기나 모두 훨씬 후대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사관에 따라서 모세의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역사 해석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 못한다 하는 논쟁이 거세지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역사는 해석이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처럼 모세의 죽음에도 서로 다른 해석이 작용한 겁니다.
민수기와 신명기의 역사 해석이 조금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양쪽이 모두 똑같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느보 산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민족 영웅이 평생의 꿈을 달성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겁니다. 성서기자들의 안목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건 모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국가를 통일시킨 다윗도 성전을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성서기자가 묘사한 그의 말년은 초라했습니다. 모든 역사라는 게 영웅들을 가능한대로 미화하기 마련이지만 성서기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모세가 느보 산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그냥 그러려니 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출애굽의 대업을 이룩한 그가 요단을 건너는 일까지 마무리 하는 게 누가 보더라도 모양새가 좋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신 34:10절 이하에서 모세는 두 가지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적 인물도 묘사되었습니다. 첫째,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출 33:18절 이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앞으로 지나가겠지만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고 뒷모습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영적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둘째, 모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집트의 파라오와 대결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태양신의 아들로 숭배 받던 파라오를 넘어선 사람은 모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영적 권위를 행사하던 모세였지만,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었습니다. 성서기자들은 그렇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임자 없는 무덤
모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죽은 모세는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 묻혔다고 합니다. 장례는 삼십일 장이었습니다. 삼십일 장은 그 당시에는 약소한 겁니다. 야곱이 이집트에서 죽었을 때 이집트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곡을 했으며,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요셉이 이집트의 국무총리 직에 있었으니 그의 아버지를 위해서 성대한 장례식이 가능했겠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본다면 삼십일 장은 예우 차원에서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모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6절 말씀에 따르면 분명히 무덤에 묻히기는 했는데, 결국 세월이 흘러서 그 무덤을 찾을 길이 없어진 셈입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 역사에 등장하게 한 인물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맞댈 정도로 영적인 카리스마가 강했을 뿐만 아니라 파라오를 굴복시킨 인물입니다. 속되게 말해서, 그의 무덤을 잘 보존하면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거나 성지 순례지로 만들어 돈벌이에 보탬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모세의 무덤을 임자 없는 무덤처럼 취급하고 말았을까요?
성서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대답을 세계 인류사와 연관해서 간접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모세의 영도로 빠져나온 이집트는 그야말로 무덤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 전 2천 7백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의 무덤으로 이집트에 94개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 피라미드를 직접 구경하지는 못했는데,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취급될 정도로 그 규모와 건축방식 등에서 엄청나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쿠프 왕의 피라미드인데, 각각 2.5톤 내지 10톤이나 나가는 화강암 2백 60만 여개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는 210 계단이었지만 지금은 203 계단만 남아 있습니다. 하루 10만여 명이 1년에 3,4 개월씩 20여년(총 2천여일) 동안, 연인원 2,3억 명이 동원된,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사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는 출애굽기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이 이런 피라미드 축성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피라미드에 얽힌 백성들의 한이 얼마나 절절한지 알았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피라미드가 바로 우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눈치 챘을 겁니다. 자신들이 만든 건축물 앞에서 황홀해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로 우상숭배이니까요. 이런 일은 이미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로 탑을 쌓아서 그런 생태적 위기로부터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피라미드와 똑같이 인간의 능력을 확인하는 데서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려는 노력입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제국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면, 바벨탑은 바벨론 제국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두 개 모두 제국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건축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두 제국과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바벨론 문명의 발생지로부터 탈출한 사람이며, 모세와 그 일행은 이집트 문명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역사를 배운 탓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무덤을 성지화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그런 깨우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당대의 역사학자라 할 수 있는 예언자들에게만은 그런 깨우침이 있었겠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성서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예 처음부터 모세의 무덤을 만들지 않은 건 아닙니다. 모세가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 묻혔다는 본문의 진술에 따르면 처음에는 누군가 그의 무덤을 만든 게 분명합니다. 자식들이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민족 지도자의 무덤이니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만들었겠지요. 처음에는 벌초도 하고 꽃으로 예를 표하기도 했겠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방문객들이 줄어들고, 급기야 모세의 무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임자 없는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어쩌다가 일어난 게 아니라 무덤을 성역화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 즉 그런 역사적 판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런 역사의식은, 즉 사람과 무덤을 우상숭배하지 않은 이유는 영웅들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성서에서 영웅사관을 결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불세출의 영웅도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능력은 죽음 이전까지만 행사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들의 무덤은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미련을 둔 개인이나 민족은 결코 건강한 생명을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모세와 같이 뛰어난 사람들의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세라는 사람, 무덤에 들어가야 할 한 자연인이 아니라 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그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신앙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영웅적인 삶에서도 주체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무덤을 성지로 만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겠지요. 우리의 삶도 무덤을 남기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죽은 우리를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더 좋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에게 미련을 갖지 않고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다니지만 별로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가 희망하는 부활생명은 무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무덤은 거기 죽어 묻혀 있는 사람과의 추억을 자극할 뿐입니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적 감수성에 불과합니다. 참된 생명은 인간이 그런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무덤이 아니라 종말에서 완전히 드러나지만 이미 예수에게서 앞당겨 일어난 부활로부터 주어집니다. 육신을 잠시 담아둘 무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인 예수의 부활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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