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소명
렘 1:4-10, 성령강림후 열넷째 주일, 2016년 8월21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현재와 비슷한 상태로 수백 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남북이 협조하여 연방제 과정을 거친 뒤에 때가 되면 완전히 통일을 이루는 겁니다. 어떤 이들이 기대하듯이 얼마 후에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소위 말하는 흡수통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북한이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스스로 위기라고 느낄 때 중국 군대를 끌어들이게 되면 결국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가장 나쁜 경우라면 한반도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리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지난 100년여의 우리 역사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북분단도 승전국들의 입맛에 따라서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설교를 성경이 아니라 국제 정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 설교할 예레미야 이야기가 바로 이런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와 유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7세기 초와 6세기 말에 걸쳐서 유다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설교의 대부분은 당시 국내외 정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렘 1:1-3절에는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유다의 요시야 왕 재위 13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해서 시드기야 재위 11년에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요시야 왕 재위 13년은 기원전 627년이고, 시드기야 재위 11년은 기원전 587년입니다. 그 기간이 대략 40년이 됩니다. 그 시절은 앗시리아 제국이 무너지고 바벨론 제국이 패권을 장악해가던 때입니다. 제국의 패권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체제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작은 나라들은 제국의 말을 듣고 생존을 보장받든지 아니면 패망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당시 한창 팽창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유다도 그런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패권 앞에서 유다 사람들의 의견이 크게 나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서 바벨론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건 너무 무모하니 양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간노선을 지키면서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자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라나 어떤 집단이나 위기라고 느낄 때 여론은 대개 강경한 입장으로 기울어집니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이 나서서 이집트와의 군사동맹을 통해서 바벨론을 격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이런 주장은 여론의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백성을 바벨론의 공격에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들이 볼 때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나라의 압력에 굴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나서서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박수를 받을만한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집트가 군사적으로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집트는 실제로 유다를 도와서 바벨론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국론이 갈릴 때는 최고 정치 지도자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강경파의 입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왕 자기의 판단이라기보다는 당시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국제질서의 돌아가는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나라를 패망의 수렁으로 떨어지게 했습니다. 시드기야가 주전파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화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유다의 운명도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유다 왕과 귀족들과 백성 모두를 향해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서 바벨론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거부하는 건 하나님에게 맞서는 겁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당시 유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예레미야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왕과 대다수 정치 지도자들은 한 목소리로 예레미야를 반대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레미야는 적국인 바벨론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말로 예레미야는 종북 좌파였습니다. 예레미야를 선봉에 서서 반대한 선지자는 하나냐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렘 28장에 나옵니다.
시드기야 재위 4년 다섯째 달에 제사장들과 백성이 모인 성전에서 하나냐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냐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굴복시켜서 앞서 포로로 잡아간 유다 사람들과 강탈해간 성전 집기를 2년 안에 다 돌려보내게 할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라는 겁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르게 들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금방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오랜 고통을 받은 후에라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힘을 잃는 게 아니라 더 강력한 힘으로 유다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냐의 설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윗 왕조의 적통이라 자처한 유다 백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예레미야의 설교는 일종의 패배주의로 평가받았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사람은 사라져주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하나냐와 예레미야는 각각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서로 입장이 상충 된다 게 이상해 보입니다. 하나냐는 거짓 선지자이고, 예레미야만 참된 선지자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라고 해서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미래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다 아는 게 아닙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건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목사들 사이에서도 세상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릅니다. 성경에 대한 입장도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한창 설교비평 작업을 할 때 어떤 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는 제가 성경의 어느 대목을 신화라고 표현한 걸 놓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저를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설교가 서로 다를 때 누가 옳은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역사가 진행되는 걸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는 겁니다. 저도 저의 신앙과 신학과 영성과 삶의 태도와 목회를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경험한 한도 안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을 가능한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다 역사에서 예레미야의 설교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만약 역사가 하나냐의 설교대로 흘러갔다면 예레미야의 설교는 역사에서 사라졌겠지요.
예레미야의 신학적 영성
예레미야는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인간적인 격정이 가장 강렬했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도 많았고, 연민도 많았습니다. 인간적인 두려움도 컸습니다.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씀에 대한 확신도 흔들렸습니다. 자신의 소명이 얼마나 확실한지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예레미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자 예레미야는 6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아이라고 여겼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8절에서 이렇게 위로합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예레미야의 두려움이 금세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소명 이야기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예레미야가 평생 두려움 가운데서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영혼이 평화로웠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사실은 곤혹스러워하진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다윗 왕조의 승리를 확신하는 적대자들이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줄기차게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영성이 확고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영성은 신학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를 신학적으로 분명하게 보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네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예레미야는 인간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렘 17:9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 본질이 부패한 인간이기에 다윗 왕조에 대한 예찬으로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2) 위기 극복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가 요청된다는 뜻입니다. 렘 4:4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이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느니라.’
3) 하나님은 값비싼 희생 제사와 제물을 원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예레미야는 알았습니다.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여기지 않노라.’(렘 6:20). 반면에 유다 백성들은 무조건 희생 제사와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4) 예레미야는 성전마저 상대화했습니다. 렘 7:4절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어서 6절 말씀입니다.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위에서 설명한 몇몇 신학적 영성이 확실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왕따’ 비슷한 처지로 몰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용감하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유다가 어떻게 되었고, 그 와중에 예레미야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신가요?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보다 10년 전인 기원전 597년에 이미 유다는 바벨론의 군사 공격을 받아 항복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1차로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고, 성전과 궁정 집기도 빼앗겼습니다. 다만 미리 항복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과 왕궁과 성전이 함락되는 것만은 모면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속국으로 지내면서 나름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그 와중에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냐와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논쟁했습니다. 그 논쟁 후에 하나냐는 죽었고, 유다는 이집트와의 동맹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바벨론에 맞서다가 결국 기원전 587년에 패망 당했습니다. 예루살렘 도시는 다 불타고,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나라 자체가 없어진 겁니다. 수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레미야는 특별하게 대우해주겠다는 바벨론의 제의를 거절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남쪽 이집트 국경 지대로 납치되다시피 끌려갔다가 거기서 60대 나이로 죽었습니다.
우리의 소명
예레미야의 운명, 특히 그의 소명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게 여기서 핵심입니다. 그것을 9절이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그림이 보이시지요? 하나님에게 손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손은 하나님의 뜻과 행동에 대한 문학적 묘사입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은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고 번역했습니다. 어머니가 숟가락에 밥을 퍼서 어린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듯한 모습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정확하게 깨달아 선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의 영적 경지에 이르러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소명 경험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운명을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근본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운명과 비슷한 길을 갑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을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같은 기독교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레미야의 소명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레미야의 소명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딱 떨어지는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경험은 각자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마치 음악경험이나 시 경험과 비슷해서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렘 1:4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강력한 힘으로 임하는 것이지 내가 노력해서 획득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예레미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영성가가 되거나 신학의 대가가 될 수 없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소명이 무엇이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이해의 깊이와 폭이 확보되면 여러분도 각각의 영적 수준에 따라서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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