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9일 예배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8rz0NdZI0YA
잔칫집 같은 교회
-하나님의 나라가 맞닿은 복된 신앙삶-
세계의 여러 나라 결혼문화를 살펴보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독일은 결혼식날 쟁반을 밟아 깬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랑과 행운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단 깨어진 접시는 신랑이 치워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도 결혼식에 신부가 쟁반을 밟아 깨면 신랑이 부수어진 쟁반 조각을 제자리에 맞추어 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영국은 결혼식은 성공회 성당이나 교회에서 하는데, 결혼식 후에는 설탕이 발린 알몬드 견과류 다섯알을 받는다고 합니다. 다섯알은 건강, 다산, 사랑, 부, 행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신랑의 들러리와 신부의 들러리가 각각 5명 정도가 한쌍씩 차례로 들어온 후에 신랑이 입장하고 그 다음에 신부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들어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신랑 신부에게 이탈리아처럼 쌀을 뿌립니다. 미국에서의 쌀의 의미는 다산과 번영을 뜻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에 미국에선 이혼하는 경향이 많아 장례식장의 교회에서 결혼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선 양가의 직계 가족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청년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I
신약성서 당시에 유대인의 결혼풍습은 결혼 전에 정혼 곧 약혼하였는데 약혼을 하려면 여자 측 부모의 동의와 신부를 맞이할 지참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약혼은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결혼과 결혼 잔치는 두 사람의 결합을 온전하게 허락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으나 신랑 집에서 벌이는 결혼 잔치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결혼 지참금과 예물을 드린 후에 신부와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신랑이 언제쯤 돌아올지 모르기에 신랑 집에 먼저 와있는 신부의 친구들이 등에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여 신랑과 신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오는데 지혜로운 처녀는 등에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했으나 등에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에 대한 비유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신랑과 신부가 깜깜한 저녁에 도착하면 먼저 와있던 신부의 친구들이 등불을 켜고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면서 잔치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시대에는 사람들을 잔치에 오라고 초대해야만 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신랑신부가 도착하고 음식이 차려지고 초대받은 사람들이 참석하면 연회장의 문은 닫히고 잔치가 시작되는데 그 후에는 웬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잡칫집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은 초대 손님의 비중에 따라 적절한 자리를 잡아주고(눅14:10), 포주도와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요2:9-10) 잔치의 흥을 돋워 모두가 즐겁고 모두가 기쁜 잔치가 되게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결혼 잔치에 참석한 남자들은 바닥에 깐 매트에 앉아 푸짐한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중간중간에 음악도 듣고 춤도 추곤 허는 반면에 당시 여자들은 따로 모였고 잔치의 축제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무대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포도주란 말이 구약성경에서는 200회 이상 나오며 신약성경에서는 34회 이상 나오는데 구약시대에 포도주는 빵과 함께 날마다 먹는 밥상에 대표적인 음식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지역에서의 포도주는 오늘날의 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음료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포도주는 안식일과 축일을 기념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서 사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석회질이 많은 물을 마시기보다는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셨는데 이는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물을 소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기적이 일곱 번 나옵니다. 첫째 기적은 가나의 결혼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2:1-12); 둘째,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4:43-56); 셋째, 38년된 병자(5:1-18); 넷째, 5병 2어로 5000명을 먹이심(6:1-14); 다섯째, 물위를 걸으심(6:16-21); 여섯째, 소경을 고치심(9:1-7); 일곱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11:38-44) 특히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한 첫 번째 기적이 의미 있는 것은 저자 요한이 가나의 결혼 잔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작은 하나님의 나라와 오고 올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기쁨의 잔치를 보여준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장 1-10절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는 세례요한이 증언할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이므로 주간의 여섯째 되는 날, 갈릴리 가나 마을의 혼인 잔치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참석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가나의 결혼 잔치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먼저 참석하여 도왔으며 예수님이 잔칫집에 참석한 것을 보면, 신부가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이었기에 초청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책 요리책”(The Good Book Cookbook)에서 저자는 예수 당시의 전형적인 결혼식이었다면 최소한 포도주와 함께 올리브, 정어리, 포도잎, 기장, 말린 살구, 종려나무 열매(대추야자), 아몬드, 건포도, 양고기, 오리 구이, 석류 그리고 쌀로 만든 밥이 풍부하게 차려져 모두가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런데 그 잔칫집은 잔치를 시작한 지 3일이 지나 예수님께서는 일행들과 함께 결혼잔치에 참석하였는데 그때는 서서히 포도주가 바닥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3일 동안 잔치를 벌였으니 얼마 안 있으면 포도주가 곧 바닥이 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이 주인집 아내에게 포도주가 거반 다 떨어졌다고 이야기하였고 주인집 아내는 먼저 도착하여 돕고 있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 같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예수께 찾아와 포도주가 바닥이 난 것을 알리면서 어떻게 해보라고 특별히 부탁합니다.
그런데 당시 상부상조의 법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규정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인다면, 신랑집 재정에 크나큰 타격을 줄 것이기에, 언젠가 결혼 잔치를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어 가져와서 후원하면 다음에 그들이 잔치할 때 받은 음식만큼 후원하는 상부상조의 풍습이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결혼식 잔치에 도움을 받았는데 도움을 준 이웃의 잔치에 도움을 주지 않을 땐, 결혼 잔치를 벌이는 그 이웃의 처지에서는 당혹스러울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피해가 되기에 상부상조하지 않았다는 비윤리적 이유를 들어 소송을 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손님들을 대접하는 포도주가 잔치 도중에 바닥이 나고 있다는 것은 잔칫집 주인에게도 큰 문제였지만 포도주를 부조한 이웃에게도 이중삼중의 엄청난 걱정거리였던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흘러 포도주가 완전히 바닥이 났을 무렵에 드디어 예수께서는 하인들을 불러 정결 예식에 사용할 물항아리에 물이 하나도 없음을 알아차리고 그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한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에 큰 장독만 한 물항아리 여섯개를 늘 준비하고 그 속에 깨끗한 물을 항상 가득 채워 넣어야 했는데 그 물은 정결 예식에 사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석가 버나드(Bernard)는 여섯 항아리의 포도주는 70가족이 먹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돌항아리 여섯개 곧 율법을 상징하는 돌항아리를 부수고 새로운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상징하는 그 돌항아리, 물이 없어 텅텅 비어있는 그 항아리에 하인들로 하여금 물을 가득 채우게 합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그것을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나르는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물이 변하게 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는 첫 기적을 예수께서 베푸셨던 것입니다.
II
아무튼 잔칫집의 손님들은 뒤에 나온 포도주는 앞서 나온 포도주에 비하면 너무나 맛이 고급지고 값비싼 것이어서 모두 다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의 경우 잔칫집엔 처음엔 좋은 포도주가 나왔다가 손님들이 흥이 나고 포도주에 취한 후에는 값싼 포도주를 내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처음에 나온 포도주도 아주 좋은 것이었는데 나중에 나오는 포도주는 처음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값진 최상의 포도주가 나왔다고 칭찬을 하면서 모두 좋아하고 모두가 신나는 잔칫집으로 칭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기적 이면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가 바닥이 났다는 것을 예수께 알린 예수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둘째는 물을 가득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말없이 순종하여 물을 가득 채운 하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물이 가득 들어있어야 할 60리터 항아리에 물이 텅텅 비어 있는 돌항아리 6개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한 기적에는 텅텅비어 있는 돌항아리도, 이름없는 하인들도 있었고 그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말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기에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은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른 사회의 모습과 함께 참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오늘 우리 현대인들이 풍요로운 세상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일은 하지만 일에 의욕이 약해져서 어디에 봉사하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동시에 남에 대한 존중과 신뢰심이 약해져서 남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무언가 열심히 일은 하지만 그 일에 참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오늘의 세상 속에서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좋은 여건 속에서 없는 것 없이 편리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곤 합니다. 우리 속에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속이 텅텅비어 있는 허전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심리상태를 풍요병의 증세하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21세기 최첨단의 현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편리하게 살아가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꿈도 상실하고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도 사라졌으며 교회를 통해 이웃과 사회를 향해 헌신하며 봉사하면서 작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신앙의 마음도 상실하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속이 텅텅 비어있는 여섯 개의 돌항아리와 같은 모습을 지닌 교회들이 많아지고 속이 텅텅 비어있는 신앙인들도 그 수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 말씀과 기도, 예배와 찬양, 전도와 선교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교인들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한국교회라고 하는 돌 항아리 속에 생명의 물이 바닥이 보일 정도로 텅텅 비어 있어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텅 빈 돌 항아리 속에 예수님은 새로운 물을 가득 채우라고 강권합니다. 그리하여 텅 빈 돌항아리 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명하고 있는지를 간파하고서 돌항아리 속에 우리의 꿈과 비전을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과 나눔의 신령한 물을 채워 넣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추구하셨던 모두가 함께 흥겹고 모두가 함께 즐겁고 신나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누릴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말씀으로 나를 보고 이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오늘의 사회와 세상의 징조를 보면서 이웃과 사회와 세상을 섬겨나가는 열정과 헌신의 물을 채워 넣어야만 오늘 우리들을 통해서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이 재현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룩하신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기뻐하며 그리고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가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III
철학 사조가운데 해체주의 철학이란게 있습니다. 해체주의 철학은 기존의 사상을 철저하게 해체한 후, 그 속에 담겨 있는 원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오늘에 새롭게 접목하고자 하는 학풍입니다. 이러한 해체주의 철학은 다른 분야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심지어 신학분야에서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면 주후 4세기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던 죄를 범한 아담과 이브의 죄가 우리 인간들에게 대물림돠어 내려온다는 “원죄”사상을 분석한 후,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의 세상 곧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원복”사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원죄”만을 강조해 오면서 예배 때마다 죄성에 대한 회개를 강조했던 한국교회의 신앙의 유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심히 좋은” “원복”의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앙으로 신앙의 강조점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돌항아리 여섯 개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정결예식에 사용할 물이 없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유대교의 텅텅 비어있는 신앙을 단번에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율법주의를 해체한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하나님 의지신앙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원복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던 것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스코트랜드의 수필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크리스챤이란 하나님을 낡고 때묻은 중고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A man knows God of more than second hand.)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교회를 통해 이룩해 나가고지 하는 마음이 없는 신앙은 모름지기 중고품 하나님(Second hand God)을 믿는 중고품 신앙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중고품이란 과거 한때는 새것이어서 그 시대에 잘 맞았으나 요사이는 맞지 않아 입기에 거북한 옷들을 중고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가 그것을 구입하였을 땐 새것이어서 품질도 좋았고 모양도 새것이어서 사용하기가 무척이나 좋았는데 이제는 구식이어서 품질도 떨어지고 사용하기가 불편하며 툭하면 고장나는 것을 중고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고품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잘만 고치면 새것 못지않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을 살펴보면 신앙도 중고품 신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역경이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에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가 필요할 때에만 예수님을 이용하는 결과가 되기에 이를 중고품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음미하지 못하고 적용하지 못한 채 그냥 바쁘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은 자주 고장이 나서 작동이 되지 않는 중고품 신앙에 가깝습니다. 만약 우리가 “먼저 알아야만 행할 수 있다”는 “선지후행”을 고집하여 교리만 강조하고 말씀의 앎-신앙의 앎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동시적이라고 하는 “지행합일”의 신앙으로 그 신앙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중고품 신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상징하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 가득 차 있어야 할 돌항아리에 물이 없어 텅텅 비어있는 중고품 신앙을 벗어나 새로운 신앙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물을 가득 채우게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토마스 칼라일의 말처럼 “중고품 신앙”에서부터 벗어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이며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인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 웃음과 흥이 넘치고 축제가 넘치는 신앙으로 바뀌어지리라 확신합니다.
IV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혼잔치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의 참 뜻은 결혼잔치의 흥과 축제가 깨지지 않도록 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은 그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교회를 향한 충성과 봉사와 헌신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쁨의 잔치와 축제입니다. 결혼잔치로 상징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과 결단과 있고 훈훈한 삶의 이야기와 웃음이 배어 나오고,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 넘쳐나며, 흥겨운 노래가 들려오는 삶의 축제(festivity)가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축하하고 모두가 함께 서로 나누며,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모두가 함께 따뜻한 환대의 마음으로 꿈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지속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했던 가나의 결혼 잔치, 따뜻한 환대의 잔치, 신나는 축제가 넘치는 잔치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잇닿아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맞닿아 있는 이러한 교회를 꿈꾸면서 함께 하나되는 공동체적인 교회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사도행전의 교회야말로 당시의 개인주의적이며 비윤리적인 사회와 세상을 향한 대안적인 비젼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사 매우 의미가 있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 속에는 어떤 돌항아리가 있으며 정결한 물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우리 샘터교회에 있는 여섯 개의 돌항아리 속에는 신령한 물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물이 중간 쯤이나 바닥이 보일 정도입니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그리고 함께 나누는 밥상공동체를 통해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흥겨운 노래와 축하와 격려의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따뜻하고도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봅시다. 교회 여기저기에서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서로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예배가 되어 떼래야 뗄 수 없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해봅시다.
나아가서 신명이 넘치고 흥이 넘치며 기쁨과 축제가 넘쳐서 그 기쁨으로 이웃과 세상을 즐겁게 섬기는 공동체가 된다면 샘터교회는 잔칫집 같은 교회 하나님 나라가 맞닿아 있는 교회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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