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의 하나님
사순절기에 생각해 보는 대구3.8 독립만세운동
지난 주일 대부분의 교회들이 3.1절 기념예배를 드렸겠지만 그건 서울에서 시작했던 3.1만세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1919년 3월 8일, 3월 10일 3월 30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독립만세운동을 펼쳐나갔던 대구 3.8만세운동과 독립선언문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해보면 우리가 반듯이 이어가야 할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이러가야함 역점을 두어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로 봉독한 누가복음 9장의 말씀 바로 앞의 말씀 누가복음 9장 26-36절을 보면 예수께서 기도하시려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란 제자만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하여 감히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광채가 났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에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나 앞으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셔서 고난당하시다가 죽을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결심하는 것 같다.
세명의 제자들은 기도하다가 조는 사는 사이에 비몽사몽간에 나타난 것이었기에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 듣지를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영광의 장소를 기념하여 장막 셋을 세우는데 하나는 주님을 위해 다른 하나는 모세를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기념하여 세우자고 간청한다. 바로 그때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었다. 이를 변화산상의 체험이라고 한다.
성서학자들은 이를 제 2의 출애굽이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의 체험과 굳은 결심. 곧 “인간의 모든 죄성과 무거운 짐들을 대신 짊어지고서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이며 모든 인간들이 치유를 받아 구원받은 인간-온전한 인간이 되게 하는 길”임을 알고서 산 밑으러 내려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갈이야말로 제2의 출애굽이라고 강조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제1의 출애굽의 말씀과 당시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각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3가지 시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의 시각은 지나간 역사를 한번쯤 기억하고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를 단순히 회상하는 시각이 있다. 이는 105년전 과거에 일어났던 3.1운동을 회상해 본 후에 곧 잊어버리는 태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둘째 시각은 과거의 역사를 현실파괴적으로 기억하는 입장이다. 이는 과거의 씻지 못할 크나큰 상처나 또는 반인간적인 억압과 잔인한 고문과 학살 등으로부터 받았던 과거의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서러움과 미움과 증오가 자신을 괴롭히는 큰 상처로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사를 보는 부정적인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역사를 보는 세 번째의 시각은 처절하게 실패하고 뼈저리게 쓰라리고 아팠던 과거의 역사 속에 있는, 소중한 교훈을 찾아내고 그 교훈을 재해석한 후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명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온몸으로 헌신하며 살아내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I
이러한 관점으로 제 1의 출애굽이 담겨 있는 오늘 본문, 출애굽기 6장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출애굽의 배경이 되는 주전 13세기는,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제국의 반인간적인 노예가 되어 그 처참하고 혹독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하나님 의지신앙으로 해방을 이룩한 내용이다. 특히 오늘 봉독하지는 않았지만,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바처럼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본 모세가 호렙산 기슭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7-8절에선 “내가 애굽에 있는 1)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2)부르짖음을 듣고 3) 그 근심을 알고 4)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5)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6)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데려가려 하노라.”고 한다.
모세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에굽에 내려가 바로왕에게 하나님께서 내 백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어 고향땅으로 가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니 바로왕이 분노하여 오히려 히브리 노예들에게 더 심한 일을 시키며 더 고생하게 하였다. 못마땅하게 생각한 모세는 하나님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라고 5장에서 질문을 한다.
이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오늘 6장의 말씀이다. “..나는 여호와라 1)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2)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3)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4)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6)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7)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8) 인도하고 9)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10) 기업을 삼게 하리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여 눈감고 귀막고서 가만히 앉아계시는 명사형의 산위-구름위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활동하시는 동사형의 하나님인 것을 잘 알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 노예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첫째로 하나님은 애굽제국의 정치와 무력과 폭력에 의해 히브리 노예들이 고통당하며 희생당할 때 함께 아파해 주시는 “통애”의 하나님이요, “약자를 보호”해주시며 끝끝내 “해방”시켜 주시는 “해방의 하나님”임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둘째로, 출애굽의 하나님, 특히 사막 광야 속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고, “생명을 넉넉하게” 하시며, “생명을 온전하게” 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하나님”이요 그 생명들이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시는 “평화의 하나님”이었다.
셋째로,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신천신지의 새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다. 출애굽의 공동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희망이 넘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II
히브리 노예들의 이집트의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해방을 쟁취한 출애굽 사건에는 하나님이 애굽의 나라에 10가지 재앙을 내려서 결국 애굽왕 바로 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기에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그 무시무시했던 일본제국으로부터 10가지의 재앙을 받고서 그 폭압정치, 수탈, 억압, 폭력, 학살 등에 맞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하여 일으킨 것이 3.1독립만세운동이었고 대구의 3.8독립만세운동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3.1운동을 일으키기 전의 일제의 만행, 일제가 내린 10가지 재앙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는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1) 1876년 2월 반강제적으로 불평등한 한일수호조약을 맺어 우리의 문호를 개방하게 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세계의 열강들이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땅을 서로 찾기 위해서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났으니 우리 조선을 전쟁의 터전이 되고 말았다. 2) 그 후 1905년 7월 27일은 카츠라-테프트조약으로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 하고 대한제국은 일본이 식민지화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조약-8월에 있은 제 2차 영일동맹에서 영국이 인도를 찾이하고 일본은 조선을 찾이하는 이권을 인정한 동맹이 있었고 9월에 러시와와 일본간에 포츠머스조약을 맺어 일본이 한반도를 보호하는 조약을 맺은 바 있다. 그런 후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조약(11월 17일)을 맺어 우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3) 1907년 1월, 일본이 대한제국에게 반강제적으로 1300만원을 차관하게 하여 대한제국을 경제적인 노예가 되게 하였고; 4) 1907년 7월에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당시의 고종 왕을 강제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한 군사·재정·사법 등 내정권을 탈취하고 만다. 5)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 6) 1911년 일제가 저항적인 민족주의 및 기독교계 항일세력에 대한 통제를 위하여 당시의 총독 데라우치 암살모의 사건을 조작하여 600여명을 검거한 후 105인을 유죄로 투옥한 105인 사건이 있다.
선후훈의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기도
1. 예예개심 못하는놈 때려죽이고/예예개심 하는놈은 살려내어서/고관대작 부귀영화 누리게 한다x2
2. 예예개심 할수없는 이내몸이니/형장아래 결박지고 꿇어앉아서/쳐죽이는 모듬매를 기다립니다x2
3. 스데반이 바라보든 열린저하늘/내주예수 서신것을 바라보면서/내영혼을 받으소서 기도합니다.x2
7) 토지조사사업 :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조사사업이란 명분을 세워 식민지가 된 조선의 토지를 약탈하고자 토지소유권조사, 토지가격조사, 지형조사 농지 조사 등을 실시하여 소수의 기득권자의 토지를 제외한 모든 땅들을 조선총독부 소유지화 함으로써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은 생존의 근거인 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땅 주인이 된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경작료를 지불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8) 도시 노동자 : 도시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인 노동자들의 임금의 2분의 1 또는 3분의 1을 받으며 극빈의 삷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들은 낮은 임금과 함께 긴 노동시간, 비인간적인 대우, 민족족인 차별을 받아 왔었기에 노동쟁의가 자주 일어났다. 1912년 노동쟁의가 6건이 일어났는데 노동자 1500여명이 참가하였고 1918년도에는 50건의 파업에 4443명이 참가하였다; 9) 쌀 증식정책 : 일제는 쌀 증식정책을 펴서 평상시보다 쌀농사를 3배나 증가하게 했는데 그 쌀을 모두 일본으로 모두 가져갔다; 10) 무단통치 : 일제가 조선을 병합할 때 내어놓은 말은 조선의 문명개선과 사회발전 및 복리증진을 위해서 조선을 병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무단정책을 통해 전국에 1560여개 헌병대 경찰서를 만들어 식민통치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 체포하여 갖가지의 고문과 함께 즉결 처형하였다. 이때 한반도는 창살없는 감옥과 같았다. 그후 40년대에는 일본군위안부, 학도병, 징용 등으로 수십만명을 전쟁터로 지하 광물을 캐내는 노동자로 노예처럼 일했고 국내엔 홍등가 휴흥가, 공창, 술과 마약 등으로 깜깜한 암흑의 시기였다.
그러나 일제는 기독교인들이 민족의 독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본 후에 당시의 교회의 설교를 검열하기도 하였고 출애굽기와 다니서와 요한계시록을 부분적으로 못읽게 하였으며 어떤 찬송들은 불온하다고 하여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찬송 70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포함하여 약 30여곡이 금지 또는 수정하여 부르도록 하였다. 그 후 일제는 일본 신사에 참배하도록 하였고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동방요배를 하게 히였다. 일제는 2차대전 중에는 교회의 모든 종들을 떼어내어 바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포악한 악정이 바로 제 3의 출애굽 곧 3.1운동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도시노동자, 극빈자들과 땅도 농사지은 쌀도 모두 다 빼앗겨버린 가난한 농민들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많이 참여하였고 우리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종교인들도 민족의 해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III. 대구·경북의 3.1운동
대구 3.8운동 : 이런 시기에 서울에서 3.1운동이 준비될 당시 기독교 대표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갑성 선생이 2월 24일 대구로 이만집목사를 찾아와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고 대구 대표로 일본정부에 보낼 독립청원서에 서명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남성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남산정교회(현 남산교회) 김태련조사)는 만세시위와 독립청원의 방식으로는 독립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이 제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만집목사와 김태련 조사는 비록 독립청원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만세시위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3월 8일 시위를 조직한다. 대구에서 일어난 3.1운동은 경북노회의 남성정교회, 남산정교회, 신정교회 등의 목사 장로들이 그리고 노회 소속 기관인 계성, 신명, 성서학원(영남신학대학교의 전신) 학생 및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찬송가 384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여기에 대구고보학생 200여명이 합세하고 장날에 모였던 시민들이 함께 함으로써 오후 2시경 대구 3.8운동의 횃불을 든 것에서 출발한다.(대구 3.8운동의 특징은 그 날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3월 10일 성문밖 염매시장에서 그리고 3월 30일 동화사의 포교사찰인 보현사의 학승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것이 특징이다.)
일경은 이만집목사를 대구 만세시위 사건의 제 1의 주동자로 보고 3년형 김태련 조사를 2년 6개월 선고를 한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그의 위치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3.1운동이전 경북노회 소속교회는 100 교회를 넘지 못했으나 20년 11월 6일 경북노회 소속교회는 268개 교회로 보고되었다.
IV
이제 저는 사순절 넷째주간에 우리는 애굽땅의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해방을 이루어낸 출애굽사건처럼 1919년 3월 1일 폭압적인 일본제국주의의 무단통치에 항거하여 용기있게 민족 독립을 선언한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우리가 찾아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
우리가 3.1독립선언문을 신학적인 눈으로 본다면 첫째로 일본침략주의의 죄성을 폭로한다 :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그에 따른 폭압정책은 다른 민족을 억눌려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며 식민지 국민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일이며...온 국민과 겨레의 생명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이라고 선언한가. 다시 말해서 일제의 온갖 억압과 수탈과 폭력과 학살 등은 반생명적이요 반역사적인 것이기에 하나님에 반하는 죄성임을 폭로한다. 계속해서 선언문은 조선의 독립은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조선의 독립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임을 외치고 있다.
둘째, 민족의 독립은 민족의 평화요 아시아의 평화(동양의 낙토로 만드는 것)요 세계의 평화 : 독립선언문에 의하면, 나라를 빼앗겨 울분과 원한이 쌓이고 쌓인 이천만 국민을 일제가 무력과 힘으로 붙잡아 묶어둔다는 것은 조선에 참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과는 정 반대되는 일이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아시아의 평화에 반대되는 일임을 선언하다. 조선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과 번영과 평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며 또한 조선의 독립은 동양의 평화를 이루게 하는 첫 출발걸음이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당시 거의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벨기에의 식민지였으며; 우리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처럼 대만은 네델란드 청나라 그 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다가 미국의 식민지, 인도, 파키스탄과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 인도차이나반도인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는 프랑스의 식민지, 인도네시아는 네델란드의 식민지였기에 조선의 독립과 평화는 아시아를 평화롭게 하는 첫걸음이라고 역설한다.) 동시에 조선의 독립은 식민지에서 신음하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도 독립을 이루어내어 참된 평화를 맛보게 하는 것임을 열설한다.
셋째, 평화로운 신천신지의 새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 : 3.1독립선언문 후반부는 요한계시록 21장 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신천신지의 새로운 세상을 갈구한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키워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 위에 던지기 시작하누나. (독립이라는)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그렇기에 독립선언문은 우리 모두 음침한(식민지의)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봄처럼 따뜻한 햇볕과 온화한 바람 곧 ‘평화의 바람과 생명을 살려내는 생명의 물결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아름다운 신천신지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기독교가 3.1운동에 함께 민족과 더불어 참여한 것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바로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자 한 꿈을 꾼 것이다. 당시의 한국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개인구원과 함께 사회까지도 민족까지도 아시아와 모든 세상까지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바랐던 통큰 꿈-통큰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오늘 우리 땅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영극화되어 서로 등을 돌리고 있고 분단된 남북이 전쟁의 위기 속에서 또다시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다. 청년들은 초개인주의화 되어 남이야 죽든 말든 관심 밖의 일이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되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또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기후재앙의 시기로 인해 한국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꿈과 비젼을 잃어버려 열정이 사라져 버렸고 무엇이 한국교회의 사명인지도 모른 채 무감각하게 그냥 서있기만 하였기에 한국교회는 그 수가 날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출애굽기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와 3.1운동의 독립선언문이 강조하는 바처럼 1) 우리와 함께 아파해주시는 통애의 하나님이요 우리를 끝끝내 해방시켜 주시는 해방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임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아야 할 것이다. 2) 그리고 출애굽의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고, “생명을 넉넉하게” 하시며, “생명을 온전하게” 하시면서 “생명을 치유하여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하나님”이요 그 생명들이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시는 “평화의 하나님”임을 고백하여야 한다. 3) 그리고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신천신지의 새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기에 오늘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의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물을 이루고 길 좌우의 나무들은 시절마다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는 세상을 치유하더라는 말씀처럼 대구 경북의 3.8절을 기리는 오늘 우리들은, 오늘의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와 민족 앞에 그리고 오늘의 세상을 향해 새로운 꿈과 비젼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제3의 출애굽의 사명인 것이다. 그래야만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 신앙인들이 우리 사회와 80억 세계인구가 살아가는 세상을 치유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누리게 하는 오늘 우리 사회와 세상을 향한 한국교회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 소중한 일을 샘터교회가 하나씩 둘씩 감당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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